꼼지락 거리기

벌초를 끝내고

큰가방 2016. 10. 2. 12:08

벌초(伐草)를 끝내고

 

아침 530분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조금 빨리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여전히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꼭 벌초를 끝 마쳐야 하는데!”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러나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생각하며 일찍 식사를 마치고 산소로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지난주에 벌초하기로 약속하였으나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오늘로 미루면서 또 비가 오면 어쩌나?’마음을 졸였는데

결국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 오는 날 벌초하면 해 뜰 때보다 조금 더 시원하겠지?’위안을 삼으며 부지런히 달려 산소에 도착하자

 

숙부님과 큰댁의 작은 형님께서는 이미 작업을 시작하고 계셨다. 그래서 간단히 인사드리고 일을 시작하였는데. 해마다 해오는 벌초인지라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작은 형님이 예초기로 풀을 베면, 나는 그것을 갈퀴로 긁어 한쪽으로 치우면서

 

옻나무 같은 알레르기 성분이 있는 나무를 잘랐다. 또 숙부님은 낫으로 예초기가 닳지 않는 곳의 풀을 베시는데 여든 일곱 연세가 드신 까닭에

힘이 드시는지 자꾸 허리를 펴시더니 상진아! 나도 인자 다 살았는 갑다!” 하신다. “이제 그만 쉬세요! 저희들이 알아서 할게요!”

 

그라문 된다냐? 내 부모님 산손께 나도 같이 해야제!” 하시는데 금년에는 억새가 유난히 많이 자라 뿌리를 파내려니 무척 힘이 들었다.

아이고! 먼노무 억달이 이라고 많이 퍼졌으까? 이것 큰 일 났네!” “억새만 죽이는 농약 없을까요? 그런 약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른 약이 으디가 있다냐! 그냥 뿌랭이를 파 내야제!” “제가 파낼게요! 쉬고 계세요!” 하고 괭이를 가지고 뿌리를 파내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 세대에는 벌초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다음, 다음 세대에는 조상님 산소에 벌초 한다고 신경이나 쓸 후손들이 있을까?”

 

가끔 시골마을에 다니다 보면 조상님 산소 벌초를 대신해 드립니다!” 하고 적어놓은 현수막을 만나게 되는데.

조상님 산소 벌초는 자기들이 해야지, 누가 대신해 준단 말인가? 그리고 대신해 주는 벌초가 과연 자손들이 정성껏 하는 벌초와 같을까?”

 

생각하였는데 금년에는 이상하게 벌초하는 날을 잡으면 비가 내리는 데다 숙부님마저 많이 힘들어 하셔서

내년에는 우리도 남에게 맡겨서 한번 해봐!” 생각하다 슬며시 웃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더니

 

작업이 끝 날 때쯤 슬그머니 멈추고 햇볕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 비가 그치려면 아까 좀 그치지, 벌초가 다 끝나니 그치네!”

숙부님 말씀에 벌초하는데 힘 들까봐, 시원하게 해 주려고 비가 왔을 거예요!” 하였더니비가 오면 풀이 잘 베어지지 않아

 

훨씬 더 힘 드는데 그래!” 작은 형님 말씀에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산소는 너무나 무성하게 자라난 풀 때문에,

산소인지 풀밭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으나, 이제 말끔해졌고 비로소 마음도 개운해졌다. 그리고 벌초하느라 수고했다!

 

이제 편히 쉴 수 있겠구나!” 하시는 조상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하였다. “추석에 다시 올게요! 그동안 안녕히 계세요!” 하고

산소를 떠나며 바라본 길옆에는 언제 피어났는지 붉은색, 하얀색, 연분홍색 코스모스들이 활짝 피어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가을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살며시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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