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해야 할 일
“남부지방은 오늘 오후부터 흐려져 밤부터 비가 내리겠습니다. 비는 내일 오전 중 모두 그치겠으나 곳에 따라 태풍 급의 강풍(强風)이 부는 곳도
있겠으니 피해가 없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나 다행히 강한 바람은 불지 않고 비는 그쳐가고 있었다.
이발을 하고 있는데 이발소 문을 빼 꼼이 열고 이제 5살쯤으로 보이는 예쁜 여자 어린이가 들여다보더니 “하나부지!”하며 킥킥킥 웃는다.
“으~응! 우리 예린이가 왔서?”하는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면서 30대의 젊은 아주머니가 들어오더니“아버님! 저 이만 가 볼게요.”
“잉! 갈래? 그라문 조심해서 천천히 가그라 잉! 왔다 간께 고맙다.”하자 아이를 보고 “할아버지께 안녕히 계세요! 해야지!”
“하나부지 안녀히 게세요~오!”하고 양손을 배꼽에 대고 머리는 땅에 닿을 듯 인사를 하자 “잉! 우리 이삔 예린이가 가꺼여?
갔다가 또 놀러와 잉!”하는 주인의 얼굴은 마치 이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그 손님은 누군가요?”
“안직 몰르고 있었는가? 우리 큰 며느리!” “엊그제 결혼식을 한 것 같은데 벌써 저렇게 손녀가 있었나요?” “엊그저께라니! 먼 소리여
이 사람아! 벌써 6년이 되얐는디 그래!”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그럼 며느리는 자주 시댁에 오나요?”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은 아니고
이따금 한 번씩 오는데 요새 우리 집 사람이 허리가 안 좋다고 그랑께 같이 병원에 가자고 왔드란 마시!” “잘하셨네요.
그러면 작은아들은 아직 식(式)은 안 올렸지요?” “아직 결혼은 안하고 약혼(約婚)만 했어! 인자 올 10월 달에 올린다고 날 받아 놨네!
그날 자네도 시간 있으문 놀러오소!” “그러면 당연히 가야지요. 이제 작은아들 결혼식만 끝나면 형님 하실 일은 모두 끝나는 셈이네요.”
“그런가? 자네 말을 들응께 참말로 그란 것 같네야!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식들 여운다고 야단인디, 나는 한나도 못 여우고 있을 때는
참말로 죽것드란 마시! 나는 헛 세상을 살고 있다냐 으짠다냐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여!” “오죽하시겠어요.” “특히 우리 친구들이나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이발하러 와서 즈그들은 생각한다고‘애기들 은제 여운가? 그라고 뜸 들이지 말고 얼렁얼렁 여워불소!’해싸문
속에 천불이 나서 못 살 것드라고!” “그러니까요.” “그라고 아들들도 얼렁얼렁 장게를 갈라고 해야 쓰꺼인디 맨 엉뚱한 짓거리만
해 싼게 참말로 죽것드라고!” “더군다나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로 결혼을 늦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작은아들은 어디 아가씨를 만났어요?”
“작은 며느리 될 애기 고향은 담양(潭陽)이라 그라데! 그란디 연분이 될라고 그랬든가 전에 다른 아가씨들하고는 몇 번 선을 봤어도 안 되드만
이번에는 우리 애기 엄마 친구가 ‘느그 아들 여자 친구 읍으문 내가 아가씨 한나 소개하끄나?’글드람서 그래서 설마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여차로‘그라문 한 번 해 봐라!’그랬는디 몇 번 만나로 댕기고 하드니 결혼할란다고 글드란 마시, 을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연분(緣分)은 다 따로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부모가 되문 다른 것은 몰라도, 학교는 갈치고,
그라고 애기들이 졸업해서 직장을 잡으문, 결혼까지는 시켜줘야, 부모의 일이 끝나는 것 같드라고! 그란디 나도 다행스럽게
금년 10월이문 작은아들을 여워! 그래서 인자는 내가 할 일은 다 했는 갑다! 그러면서 그래도 내가 살아있을 때 일이 모두 끝나 다행이다 그 생각이 들드랑께!”
추수가 모두 끝난 논에서는 동물 먹이가 될 볏짚 묶기가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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