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미역국의 추억

큰가방 2017. 4. 23. 18:03

미역국의 추억

 

TV를 켜자 K본부에서 진행하는전 국민 이야기 대회 내말 좀 들어봐!’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저의 아들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아주 골치 아픈 아이였습니다. 평소에는 아빠인 제가 불러도 대답도 잘하지 않았고,

 

집에 있어도 방구석에 쳐 박혀 잘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꾸 사고를 치는 바람에 내속은 검게 타들어가기만 하였고 걱정이 되었는데,

고등학교로 진학하더니 점점 변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아빠 같이 목욕탕에 갈까요?’탁구장에 갈까요?’하는가

 

싶더니 2학년이 되었는데, 지난번 제 생일날이었습니다. 저의 집사람이지금 아들이 당신 생일이라며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살며시 귀띔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무슨남자 녀석이 미역국을 끓여!’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직장에 출근하였고,

 

그날 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자 정말 저의 아들은 근사한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을 차려주었습니다.”말하는 출연자의 입가에는

계속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미역국!’이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사실 나는 미역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혀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하는 음식(飮食)인데,

나의 어린 시절에는 아주 좋아해서 끼니때마다 끓여줘도 싫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미역국을 싫어하게 된 동기가 있었는데

 

내가 우체국에 근무하기 전 광주에서 직장생활 하던 때였다.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았던 1970년대, 그 시절만 하더라도 냉장고(冷藏庫)가 없었던

시절이어서 매년 여름이면 우리어머니들은 그야말로 반찬(飯饌)하고 전쟁(戰爭)을 치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냉장고가 없으니 만들어 놓은 지 2~3일만 지나면 시어지거나 또는 상해서 먹을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더군다나 광주에서 자취를 하였던

나는 집에서 김치를 담아 가지고 와도 2~3일이면 시어져 먹을 수 없게 되어 아무리 아까워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반찬도 없이 맨밥만 먹을 수가 없어, 어느 여름날 하루는 큰맘 먹고 그 당시 광주에서 제일 큰 양동시장에서 돼지고기 반근(半斤)

묵은 김치를 샀는데, 김치를 조그만 비닐봉지에 담아 묶고는 다시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밤은 모처럼 돼지고기와

 

김치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룰루랄라!’콧노래를 부르며 시내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향하여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큼한 김치 냄새가 나기 시작하여 살펴보았더니아뿔싸!’김치를 담았던 비닐봉지가 터져 시큼한 국물이 내 무릎위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생각하다 택시를 타면 되겠구나!’하고 잡으려는데김치 냄새가 강하게 난다!’는 이유로 승차(乘車) 거부를 당하고 말았고,

그래서 결국 터덜터덜 자취방까지 걸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도 여름철 반찬 걱정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미역을 사라!’며 자취방에 찾아왔다. “미역을 물에 불려서 초장에 찍어 묵어도 좋고,

또 국도 끼래 묵고, 또 씨연하게 짓국도 맹글아 묵어도 좋고, 그랑께 여름에는 미역이 최고여!”말을 듣고 기다란 미역 20장 한 묶음을 구입하여

 

잘게 잘라 놓고, 매일 아침이고 저녁이고 끓여 먹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맛있던 미역국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미역국 냄새도, 쳐다보기도 싫게 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래도 가끔 그때가 그립고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르신 무엇하고 계세요?"  "이~잉! 쑥하고 미나리가 마니 지러나서 그것 잔 캐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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