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고향도 고향 나름

큰가방 2019. 5. 18. 14:00

고향도 고향 나름

 

오늘은 매월 한 번씩 있는 정기 산행(山行) 날이어서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모여 오늘의 목적지 조계산(曹溪山)으로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이 순천 송광사(松廣寺) 대웅보전 앞 나무그늘에서 뒤 따라오는 일행을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70대로 보이는

 

영감님 한분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혹시 산에서 내려오는 질이요?”물었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이제 산에 올라가려고요.”

그래요? 그러면 나는 혼자라 그러는데 같이 동행하면 안 될까요?” “어르신만 괜찮다면 같이 가셔도 상관없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하여 함께 산을 오르게 되었다. 우리 일행이 장군봉으로 가는 길목인 굴목재를 향하여 오르고 있는데

점점 가파른 언덕길에 크고 작은 바위와 돌멩이가 깔린 거친 등산로 때문에 어느새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었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 가다 쉬다를 반복하였는데 얼마나 올랐을까? 함께 오르던 영감님이 눈을 반짝이며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여가 옛날 내가 젊었을 때 그랑께 한 50년 전에 나무했든 데란 말이요. 그란디 그때는 솔나무하고 밤나무가 많했는디

 

으째 인자는 그 나무는 안 뵈이고 다른 나무만 보인단 말이요.” “원래 밤나무는 수명이 그렇게 길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영감님 고향은 어디신데요?” “원래 내 고향은 여그 송광면(松光面)이요. 내가 여그서 나무하고 그럴 때만해도

 

산을 훨훨 날아 다녔는디 인자는 나이를 묵다본께 이라고 산에 오르기도 심이 부친단 말이요.” “그런데 여기서 나무를 했으면

영감님 집까지 거리가 있을 텐데 어떻게 옮기셨어요?” “원래 여기는 송광사 땅이란 말이요. 그랑께 나무를 하기 전

 

미리 주지(住持)스님한데 가서 허락을 받어야 되아요.” “그러면 허락은 잘 해 주시던가요?” “그 시절만 하더라도 배고픈 시절잉께

무엇이라도 해야 묵고 살 것 아니요? 그렁께 주지스님한테 가서 말을 하면 빙긋이 웃음서 그러라!’고 하시제 딴 말은 안 하거든!

 

얼렁 말해서 나무를 많이 해라! 작게 해라! 그런 말은 안 하고나무는 해 가되 사람들이 보면 곤란하니 잘 알아서 해라!’하드란 말이요.”

그러면 어떻게 눈에 안 띄게 운반하셨어요?” “낮이면 나무를 지게에 지고 도로 가까운 데 으디 눈에 잘 안 뵈는 데다 모아 놓고

 

밤이면 소달구지를 갖고 와서 실어 나르고 했어요.” “그러면 나무는 파셨어요?” “그 시절에는 여기서 나무를 해 가문장작이 좋다!’

서로 사 가려고 했거든, 그래서 그걸 팔아 식량도 사고 가용도 쓰고 했어요.” “그러면 현재 영감님이 살고 계신 곳은 어디신가요?”

 

내가 젊었을 때 여그를 떠나 쩌그 서울서 살다가 인자 나이도 묵고해서 고향 찾아온다고 순천으로 왔단 말이요.

그란디 와서 본께 외로와서 못 살 것 드란 말이요.” “그 동네에는 영감님 또래 분들이 안 계시던가요?” “으째 읍것소? 그란디

 

나는 이라고 산을 좋아한께 자꾸 배깥으로 댕기기를 좋아한디 도시에 사는 영감들은 노인정 같은데 모여 갖고 있응께

나하고는 안 맞드란 말이요.” “그러시겠네요. 그러면 원래 고향인 송광면으로 가시지 그러셨어요?” “나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닌디. 막상 고향마을로 갈라 그랑께 벌써 거기를 떠난지 50년이 넘어갖고 친척들이 누가 있으까?

친한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까? 암도 읍드란 말이요.” “정말 그러시겠네요. 그렇지만 한번 옮기셨으니

 

순천에 정을 붙이면 고향처럼 좋지 않을까요?” “금메 그래야 되까? 으째야 되까? 순천도 고향이라고 간 것인디

고향도 고향 나름이라 얼렁 거그서는 정이 안 붙응께 그것이 젤로 꺽정이란 말이요.”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7080 거리의 벽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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