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전라도 말

큰가방 2003. 12. 7. 09:19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오늘은 바람이 불고 추워질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
가 빗나가지 않았는지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편물을
정리하여 우체국 문을 나설 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러
나 바람은 차츰 강해지면서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추위가 시작되려나 하
는 느낌입니다.

저는 어느덧 보성읍 봉산리 정골로 향하고 있습니다. 봉산리 정골은 본 마을인 덕정 마을과
왕복 약 2㎞ 쯤 떨어진 곳의 외딴집에서 안준현 씨 라는 30대의 젊은 부부가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곳입니다. 안준현 씨의 집에 이르러 오토바이의 빵빵 소리를 듣고는 안준현 씨가
얼른 달려나오며 저를 반깁니다. “어이구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간 무고하시지요?” 하고 안
부를 묻습니다. “오랜만일세! 그간 별일은 없으셨고? 금년 농사의 수확량은 어떻던가?” 하
는 저의 물음에 “금년 농사는 평년작 밖에는 되지 않아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래! 다른 분들은 날씨 때문에 수확이 많이 감소되었다고 하던데 자네는 그런 대로 괜찮
은 모양일세?” 하는 저의 말에 “수확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지 언제나 수확량이 똑
같을 수가 있답니까! 어차피 쌀값은 오르지 않고 하니까 수확량이 조금 많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고 대답을 하는 안준현 씨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씁쓸한
그림자 같은 것이 언뜻 스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도 쌀을 사 먹는 입장이지만 몇 년 전이나 현재나 쌀값은 똑 같아서 농사를 짓는 농
부들의 입장에서는 요즘은 상당히 견디기 힘든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부디 정부에
서는 농민들도 좋고 다른 사업이나 무역 등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정책을 내놓아서
농사를 짓고 사는 농부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농사를 짓게 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다음 마을 향합니다. 그래서 도착한 마을이 보성읍 봉산리 오서 마을입니다.

그리고 오서 마을 첫 집에서 큰소리로 “할머니 계세요?” 하고 주인 할머니를 찾았더니 할머
니께서는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하시다가 얼른 밖으로 나오시더니 “우메 이삔 아제가 오랜만
에 오겠네! 우리 집이 뭣 좋은 것이 왔으까?” 하시며 저를 반기십니다.“할머니 혹시 박성오
씨라고 들어보셨어요?” 하고 묻자 할머니께서는 “응 그란 이름은 못 들어 봤는디! 가만있자
거시기 요 아랫집 빈집 그 집 인갑구만!” 하십니다.

“할머니 그 댁에는 이사를 가시고 지금은 아무도 안 계시잖아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고개를 갸웃하시더니 “카만이 좀 있어봐 잉!“ 하시며 무엇인가를 생각하시는 눈치입니다.
그러더니 ”이 양반이 구신 양반인디 으째 이 양반한테 뭣이 왔으까?" 하십니다. 그래서 제
가 다시 묻습니다.“할머니 구신 양반이 누구인데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저의 물음에는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근디 이것이 뭣이여?” 다시 저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이것은 군청에서 토지의 지가를 조사하여 개별지가 조사표를 작성하여 보내 드리는
겁니다!” 하고 대답을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그라문 이것을 으따가 쓰라고?” 하고 다시
묻습니다. “할머니 이것은 내년에 종합 토지세가 나올 때 그때 지금 조사한 것을 기초로 세
금을 매기거든요! 아시겠어요? 그런데 할머니 구신 양반이 누군데 그러세요?” 하고 제가 다
시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아니 구신 양반도 몰라?’하는 표정으로 “구신 양반이 아니고 구
식 양반 그랑께 오랜된 양반이라고~오!” 하십니다.

‘아니? 구신 양반은 누구이고 오래된 양반은 또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어서 다시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러니까요~오 오랜 된 양반이 누구 시냐고요~오?”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더니 “누구기는 누구여 우리 할아부지 이름이제!” 하십니다.
“할머니 그러면 그냥 할아버지 이름이라고 말씀하시지 왜 구신 양반이라고 하셨어요?” 하였
더니 할머니께서는 “아따 말도 징하게 못알아 묵네 구신 양반이나 구식 양반이나 오래된 양
반이나 똑 같제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말을 그라고도 못 알아 묵어 금메~에!“ 하시며 참으
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아직도 시골마을에는 댁호(宅呼)라는 것이 있습니다. 00댁 00양반 하는 댁호라는 것이 있는
데 새 색시가 시집을 오게 되면 새 색시의 친정마을의 이름을 따서 댁호를 지어줍니다. 가
령 오서 마을에서 새 색시가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가게 되면 오서 댁이라는 댁호가 붙습니
다. 그러면 새 신랑은 오서 양반으로 불립니다. 그래서 저는 구신 양반이라고 하여서 댁호
가 구신 양반인줄로 만 생각을 하고는 구신 양반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할머니의 생각은 저
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구식(舊式)양반을 말씀하셨다니 할머니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은 제
가 정말 잘못인가요? 저는 아닌 것 같은데


'농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세상에는 없는 약  (0) 2003.12.21
점심식사 소동(?)  (0) 2003.12.14
여름향기 나는 녹차밭?  (0) 2003.11.30
거시기 한 것(?)  (0) 2003.11.23
할아버지와 손녀  (0) 2003.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