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무챗국이 뭐시여?"

큰가방 2008. 3. 30. 09:53
 

“무챗국이 뭐시여?”


엊그제까지만 해도 찬바람이 불어오던 날씨가 3월의 중순으로 넘어서자마자 하늘에 떠있는 밝은 해는 따스한 햇살을 시골의 넓은 들판에 골고루 포근하게 비추어주고 있으며 살랑살랑 얼굴을 간질이며 불어오는 봄바람이 도로 건너편 양지쪽에 웅크리고 앉아 추위가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이름모를 잡초(雜草)들에게 “이제부터 봄이 시작되었으니 빨리 일어나라!”재촉하였는지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러 달려가는 나를 보고 밝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조그맣고 앙증맞은 하얀 잉크 색 꽃들을 수없이 피워내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을 빙 돌아 살피더니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겨울이 우리 곁을 떠나기 싫다고 발버둥치더라도 찾아오는 봄을 결코 이겨낼 수는 없었는가 보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 맨 윗집으로 올라가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두고 적재함에서‘책’이라고 써진 소포 한 개를 꺼내들고 큰소리로


“할머니! 저 왔어요!”하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들일을 하러 나가셨나? 오전에 우체국에서 전화를 했어도 받지 않더니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같은데 그러면 이 소포는 어떻게 하지? 우체국에 가지고 갔다 내일 다시 가지고 와? 그런데 내일도 할머니께서 나를 기다린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지? 옳지! 우편물 손댈 사람도 없으니 우선 마루에 놓아두고 이따 우체국에 귀국하여 전화 드려야겠다!”하고 현관문을 열고 소포를


방 청소하는 조그만 빗자루 옆에 놓아두고 나와 다른 집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우편물 배달이 모두 끝나고 우체국에 돌아와 잔무정리까지 마쳤는데 “참! 할머니께 소포 확인하시라고 전화해드린다는 게 깜박 잊었네!”하며 할머니 집으로 전화를 걸어 신호가 가고 잠시 후 “여보시요!”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거기 김영남 씨 댁이지요?” “잉? 뭐시라고? 여그는 영남떡 집이 아니고 율리떡 집이요!” “그게 아니고 할머니 이름이 김영남 씨 아니세요?” “금메 영남떡이 아니고 율리떡이랑께 그라네!”


“할머니~이 이름이 김영남 아니세요~오?” “영남이는 내 이름이 맞는디 그란디 으디여?” “여기는 보성우체국이에요!” “뭐시라고? 무챗국이라고? 무챗국이 뭐시여? 잘 안 들린께 크게 말해봐!” “무챗국이 아니고 우체국이라니까요~오!” “무챗국이 뭣인디 그래싸~아?” “할머니 그게 아니고 여기는 편지를 배달해 드리는 우체국이라고요~오!”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오~오! 편지 배달하는 우체부 아제라고 그란디 으짠다고 전화했어?” “오늘 할머니 댁으로 책이 한권 와서 마루에 놓아두었거든요.”


“잉! 책? 우리 딸이 책을 한권 보낸다고 했어! 그랑께 낼이나 모레 올 것이여! 그라문 우리 집으로 갖고 와!” “그게 아니고 따님이 보낸 책을 할머니 댁 마루에 놓아두고 왔다고요!” “우리 딸이 책을 갖고 와서 마루에 있다고? 뭔 말인지 잘 모르것응께 크게 말해 봐!” “오늘 따님이 보낸 책이 와서 할머니 댁 마루에 놔두고 왔다고요~오! 아시겠어요~오?” “우리 딸이 책을 보냈응게 알았냐고? 아이고 뭔 소리가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것네!” “그게 아니고요~오! 할머니 댁 마루에 빗자루 있지요?”


“비찌락? 잉! 비찌락 있는디 으찬다고?” “책을 빗자루 옆에 놔두었다고요!” “책이 비찌락하고 같이 있다고?” “그게 아니고 할머니 댁 마루에 빗자루와 쓰레받기 있지요? 그 옆에 책을 놔두었으니까 지금 마루 한번 살펴보세요!” “오~오 그랑께 책을 물래에 비찌락하고 같이 놔뒀다고!” “예! 그러니까 전화 끊지 마시고 한번 살펴보세요!” “여가있네! 여가있어! 사람도 없는디 고생했소! 고맙소! 잉!”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어휴~우! 힘들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목이 아프지?” 

 

 

 

 

*전남 보성 회천초등학교 6학년 체육 시간입니다. 전체 학생 수 100명도 되지 않은 시골의 조그만 학교지만 어린이들의 달리는 모습이 무척 경쾌하지요? 

 

 

36160

'빨간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건 웬 떡입니까?"  (0) 2008.04.19
이상한 이름  (0) 2008.04.05
우체국 사칭 사기전화에 주의하세요!  (0) 2008.03.23
"원래 성질이 저런 다요!"  (0) 2008.03.16
이상한 전화  (0) 2008.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