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넘어진 양수기

큰가방 2005. 3. 13. 09:44
 

넘어진 양수기 

2001.04.27


따스한 날씨 속에서도 농촌의 일손은 점차 바빠지기만 합니다. 들판에는 모내기 할 물을 대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못자리하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뭄 탓인지 양수기로 물을 퍼 올려 못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하늘만 쳐다보고 비 오기만 기다리는 시대는 지나서인지 들판 곳곳에 양수기를 설치하여 물을 퍼 올리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비가 좀 와 줘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이~이! 어야~아!”하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 하고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물을 퍼 올려야할 양수기가 옆으로 넘어져 있고 양수기에서는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릅니다. "저! 저! 양수기 좀 어떻게 해봐 양수기에서 연기나 나네! 이것 참 큰일 났네!" 하십니다. 그래서 우선 양수기 전원을 끄고 양수기를 반듯이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전원을 넣었더니 역시 연기가 나는 겁니다. "어르신 양수기 안에 마중물이 없는 모양이네요! 어디 바가지 없어요?" "응! 마중물이 뭣이여?" "마중물은 양수기의 안에 조금 들어있는 물 있지요? 그 물을 말합니다! 그 물이 있어야만 양수기를 돌려도 연기도 안 나고 물이 따라 올라오지요!" "응 그래! 그런데 어디 여기 바가지가 있어야지!" "꼭 바가지가 아니어도 되니까요! 아무거나 물을 좀 떠올 수 있으면 되요!


어르신 저기 막걸리 병에 술 있어요?" "아니 없어! 아까 내가 다 마셨어!" 하시는 표정이 약간 미안한 표정입니다. 나 혼자 술을 다 마셔서 미안하다는 그런 표정 말입니다. "술이 없으면 잘 됐네요!" 하고서 막걸리 병에 물을 담아 양수기 마개를 끄르고는 물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양수기가 물을 참 좋아하데요! 막걸리 병으로 네 병을 붓고 나니 양수기가 물이 차는 겁니다.


"어르신! 이제는 되었으니까 전기를 넣어 보세요!" "인자는 괜찮하까?" "예!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이제 사용하셔도 됩니다!" 하고 전원을 넣었더니 양수기는 다시 힘차게 돌아가며 물을 퍼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시는 어르신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제는 비가 좀 내려줘야 나이 드신 어른들 그리고 농민들께서 고생을 안 하실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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