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업은 애기 삼년 찾기?

큰가방 2008. 10. 25. 17:45

업은 애기 삼년 찾기?


나는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가는 길. 들판에 누렇게 잘 익어 고개 숙인 벼들을 커다란 콤바인이 힘찬 엔진 소리를 내며 수확하기 바쁜데 지난여름부터 아직까지 한번도 비다운 비가 내린 적 없는 쪽파 밭에는 오늘도 양수기를 이용하여 물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날씨가 정말 너무 오래 가물었는데 아직도 비 내린다는 소식이 없으니 제발 많은 비가 내렸으면 좋으련만!”하는 생각을 하며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원영천 마을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 “정(丁) 팀장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어제 봉강리 모원마을 박영석씨 등기우편물 배달하셨나요?” “박영석씨 등기우편물이라면 보청기가 등기로 와서 영감님께 전해드렸는데 뭐가 잘못되었다고 하던가요?” “보청기를 발송한 회사에서 배달이 되지 않았다고 콜 센터에 민원을 넣었나 봐요!” “그랬어요? 어제 박영석씨 댁에 소포 한 개와 등기가 와서 같이 드렸는데 이상하다?”


“아무튼 박영석씨 댁에 가보시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세요!”하고 전화는 끊겼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돌려 봉강리 모원마을로 달려가면서 “혹시 영감님께서 집에 안 계시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이상하다? 왜 우편물을 받아놓고 안 받았다고 하셨지? 절대 그럴 분이 아닌데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하고 모원 마을 박영석씨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마당으로 들어갔더니 영감님께서 “아이고! 바쁜디 뭣하러 왔는가?”하며 깜짝 놀라신다. “어르신! 보청기를 안 받았다고 하셨어요?”


“아니! 받었는지 안 받었는지 내가 정신이 업어서 몰르것다고 그랬제~에!” “그런데 보청기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시겠어요?” “가만이 생각해 본께 내가 자네한테 보청기를 받어 갖고 우리 안 사람을 준 것 같은디 저 사람이 요새 정신이 없어! 그란께 금방 둔 것도 잊어 불고 찾고 야단이단 말이시!”하시자 할머니께서 “아이고! 바쁜 양반 또 오게 해서 미안해서 으째사 쓰까? 잉! 그란디 그것이 으디를 가 불고 안 보이냔 말이여! 내가 으째 이라고 정신이 없으까 잉!”하시며


건넌방에서 보청기를 찾고 계셨던 듯 장롱 속에 들어있던 옷가지며 이불을 방바닥에 꺼내놓고 이리저리 뒤지고 계셨다. 그래서 빙긋이 웃으며 큰소리로“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보청기 찾아드릴게요!”하였더니 “그것을 놔 둔 나도 못 찾고 있는디 편지 아제가 우추고 찾으껏이여! 아이고! 그랑께 늘그문 죽어야 쓴 것인디!”하신다. “돌아가신다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못 찾으면 제가 보청기 한 개 사드리면 될 것 아닙니까?” “안 그래도 아제를 여그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 죽것는디 보청기까지 사 주문 되것어?


그나저나 이일을 으째사 쓰까? 이것이 으디로 가부렇냔 말이여? 징하게 비싸게 주고 삿는디!” “할머니 보청기는 귀에 찔러 사용하니까 새끼 손 톱만큼 아주 작고 또 자주 사용해야 하는데 장롱 깊숙이 넣어 두지는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안방으로 가보시게요!” “대차 그라것네! 잉! 그라문 이리와 봐!”하고 안방 문을 열었는데 방바닥에 연두색 보청기 봉투가 놓여있었다. “어르신! 보청기 봉투가 여기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방 어디엔가 있을 것 같아요! 어르신 안경은 어디에 두고 사용하세요?”


“ 내 안경? 거그 전화기 옆에 봐!”해서 전화기가 놓여있는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으나 보청기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화장품은 어디에 두고 계세요?” “내 화장품? 몇 개 안되야!” “그게 아니고 화장품 넣어두는 그릇이 어디 있냐고요?” “화장품 그럭? 자 여그 봐!”하며 내 놓으신 화장품 그릇에 다소 두툼한 노란 봉투가 들어 있었고 봉투를 뜯었더니 보청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영감님 “참!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더니 우리 집이 꼭 그 짝 났네! 그 짝 났어!”

 *가을은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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