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그래도 가고 싶어!"

큰가방 2008. 10. 18. 18:41

“그래도 가고 싶어!”


어젯밤 날씨가 상당히 차가웠는지 오늘 아침 우체국에 출근하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가 자욱하였고 마을 어귀에 서있는 커다란 은행나무는 어느새 푸른 옷에서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가는 소슬바람에 추위를 느꼈는지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러나 오전 11시경 오늘 배달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갈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햇볕 따가운 조금 무덥게 느껴지는 늦여름 날씨로 변해있었고


하얀 머리 곱게 빗은 억새가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데 시골마을 앞 공터에는 금방 논에서 수확하여 널어놓은 벼와 콩, 팥, 그리고 붉은 고추가 따가운 햇볕 아래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많은 고추잠자리들이 시골들판 푸른 하늘을 한가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을은 어디서 찾아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보며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오늘 마지막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양동마을에 도착하였는데 마을 앞 도로변에 할머니 한분이 잘 마른 콩 다발을 작은 막대기로‘탁! 탁!’두드리며 콩을 털고 계셨다. “할머니! 그렇게 콩 털기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기는 뭐시 힘들어?” “마을에 어린아이들이 있으면 콩 다발 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라고 하면 할머니가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콩이 잘 털어질 텐데!” “그란디 동네가 애기들이 있어야 말이제! 그래도 올해는 날씨가 좋아갖고 콩이 많이 나와서 좋구만!


그란디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 “전기요금이 나왔네요!” “그새 전기세가 나왔어? 돈 낼 것은 잘 돌아오네! 잉! 그란디 을마나 나왔어? 내가 눈이 있어야 그런 것을 일거보제!” “만 6천원 2백 원이 나왔네요!” “그랬어? 와따~아 많이도 나왔네! 그란디 우리 집 전기세는 우리 큰아들이 자동납부를 해서 내고 있는디 왜? 그것이 나한테 나왔으까?” “그것은 전기요금 주소가 할머니 댁으로 되어 있으니까 이쪽으로 나와요!” “그래~에! 그래도 돈은 우리 아들 통장에서 빠져나가제?” “아마 그렇게 되어있을 거예요!”


“잉! 알았어! 갈쳐줘서 고마워 잉!”해서 전기요금 고지서와 우편으로 발송된 보성읍내에서 행사한다는 초대장을 할머니 손에 쥐어드렸는데 초대장을 받아든 할머니 “그란디 아제! 이것은 뭐시여?”하고 물으셨다. “보성읍내 예식장에서 노인들을 모시고 재미있는 공연한다는 초대장이네요!” “초대장? 에이! 약(藥)장사들이 또 노인들 모아놓고 거짓말 할라고 그란갑구만!” “그것을 어떻게 아세요? 그럼 할머니께서도 혹시 그곳에 가보셨어요?” “그라문 가 봤제 안 가 봤것어?


그란디 그 사람들 순전히 사기꾼들이드만! 거짓말만 하고 말이여!” “정말이에요? 그런데 할머니가 어떻게 그것을 아세요?” “먼자 내가 한번 가 봤는디 무슨 약을 묵으문 허리 아픈 데가 금방 낫는다고 해 쌓데! 그란디 나도 자꼬 허리가 아프고 우리 큰아들도 도시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디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두 박스를 삿어! 그란디 암만 묵어도 효과도 없고 오히려 더 아픈 것 같어! 그래갖고 우리 아들이 쫓아와서 ‘그 놈들을 고발할란다!’고 난리를 쳐서 내가 말기니라 혼이 났단께!”


“그러면 돈도 많이 들었겠네요!” “그때 돈도 많이 들었제! 내 통장에 녹차(綠茶) 팔아 쪼금 모아 놨는디 다 없어져 부렇응께!” “그런데 그 사람들이 파는 것은 약이 아니고 건강보조식품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무슨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있으니 문제가 되거든요!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한번 당하셨으니 이제 그곳에는 가지 않으시겠네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빙긋이 웃으며 “그래도 또 가고 싶어진단께!” “왜요?” “거그 가문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재밌는 것을 많이 보여준께 그라제~에!”

 

 

*아저씨 이쁘게 찍어주세요! 김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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