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돈이 없어 못가!"

큰가방 2008. 11. 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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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못가!


10월 하순으로 접어들자마자 내린 비는 충분한 양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었고 늘 안개에 가려져있는 듯 뿌옇게 보이던 하늘은 모처럼 높고,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로 변해있는데 하얀, 연분홍, 빨간 코스모스는 어젯밤 불어대던 강한 바람에 꽃잎을 많이 빼앗겼는지 몇 장 밖에 남지 않은 꽃잎을 지키려 지나가는 산들바람과 맞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철없는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코스모스 꽃잎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요즘 들어 시골 들녘의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면서 길가의 가로수들도 거의 옷을 벗어 왠지 모를 황량함과 쓸쓸함을 느끼면서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화동 마을 가운데쯤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늘 잠겨있던 방문이 반쯤 열려져있었다. “방문이 열려진 것으로 보아 오늘은 할머니께서 일하러 밖에 안 나가셨나 보다!”하며 “할머니! 어디계세요?”하고 큰소리로 부르자.


“나! 여깃어! 그란디 누구여?”하며 화장실 쪽에서 대답하셨다. “반가운 편지 아제가 왔는데 오늘은 일하러 안나가셨어요?” “그랬어? 편지 아제가 왔구만 쪼끄만 지달리고 있어! 금방 나가께!”대답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엊그제보다 많이 핼쑥해져 있었는데 “오늘은 또 뭣 갖고 왔어? 돈 내라는 것이문 갖고 오지 말제!”하고 빙긋이 웃었다. “돈 내라는 것이 아니고 돈을 갖고 왔어요! 서울 김성옥씨가 누구 되세요?” “우리 큰며느리여!” “큰 며느님께서 돈을 십 만원 보냈네요!”


“그랬어? 내가 요새 몸이 잔 안 좋아 돈을 보내라고 했드니 보냈구만!” “몸이 어떻게 안 좋으신데요? 얼굴이 많이 아파 보이거든요!” “엊그저께부터 이상하게 설사를 해쌓네!” “그러면 혹시 음식을 잘못 드신 것 아닐까요?” “혼자 사는 사람이 음식 잘못 묵을 것이나 있었어? 그냥 늘 묵든 대로 묵었는디 그라네!” “아무래도 혼자 음식을 드시면 상한 음식도 아까운 마음에 먹는 수가 있거든요! 그러다 탈이 나곤 하는데 상한 음식 드신 일 없으세요?” “상한 음식은 안 묵고 그냥 집에 있는 것만 묵었단께!”


“그러면 빨리 병원에 가보셔야지 지금까지 안 가고 계셨어요?” “율포(栗浦) 보건소(保健所) 가서 약을 타다 묵었는디 안 듣네!” “설사를 어떻게 하시는데요?” “첨에는 배가 쪼금씩 아프다 늘 변소에 가고 싶드니 나중에는 변소에서 살다시피 했단께! 그란디 오늘은 변(便)에 피가 섞어진 것 같이 빨간 것이 나와 쌓네!” “배가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던가요?” “몰라! 늘 화장실을 댕기다 본께 배가 아픈지 안 아픈지도 모르것단께!” “그러면 보건소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던가요?”


“별 말도 안하고 약 지어주면서 하루 세 번 묵으라고 하든디!” “그래서 식사도 하지 않고 약만 드시고 계셨어요?” “밥 묵고 싶은 생각이 업는디 우추고  묵으껏이여? 그냥 약만 묵고 있었제!” “할머니~이! 그러다가 큰일 나요! 빨리 읍내(邑內)에 있는 큰 병원에 가보세요! 제가 의사선생님이 아니어서 무슨 말을 못하겠지만 그렇게 오래 설사를 하시면 몸에 탈수 현상이 생겨 사람이 죽는 수도 있거든요. 더군다나 어제부터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면서요?” “그란디 차(車)가 업어 우추고 병원에 갈 것이여?”


“택시타고 가면 되지 않습니까?”하였더니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진 할머니. “아이고! 돈도 업는디 우추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를 가~아?”하신다. “할머니! 돈 아껴 뭐하려고 그러세요?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것도 필요 없는데! 금방 며느님이 보낸 돈 있지요? 그 돈으로 택시타고 병원에 가시고 읍내에 나가신 김에 맛있는 것도 사서 드시고 오세요! 아시겠지요?”하였더니 금방까지 답답한 표정을 짓고 계시던 할머니. “대차 아제 말이 맞네! 그 돈 애끼지 말고 병원에 갖다 와야 쓰것네!”

 

 *호박이 뭣을 묵어서 이라고 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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