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무슨 옷을 입으까?"

큰가방 2012. 11. 10. 17:27

 

“무슨 옷을 입으까?”

 

전남 보성 평촌마을 위쪽 집에 조그만 택배하나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영감님께서 마당에 널어놓은 콩을 기다란 작대기로 두들기고 계시다 나를 보고

“아이고! 자네 참말로 오랜만에 보것네!”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계셨어요?” “그란디 으째 그라고 오랜만인가?” “저야 마을에는 자주 오지만 요즘 계속 농번기 때라 사람 만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라고 본께 자네 말도 맞네! 대차 요새는 사람들이 가을하니라고 전부다 들로 나가분께 동네가 사람들이 귀하제~잉! 자네가 귀한 것이 아니고 내가 귀한 사람이시! 허~ 허~헛!”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랫집 할머니께서 헐레벌떡 마당으로 들어오시더니

“우체국 아제!”하고 부르신다. “할머니 무슨 일로 저를 찾으세요?” “이것이 머신가 잔 봐줘!” 하며 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내 놓으셨다.

“이건 주민세와 재산세 독촉장인데요.” “이~잉? 독촉장이라고? 내가 세금을 잘 낸다고 냈는디 으째 그것이 안 내졌으까?”

 

“세금은 내기 싫어서 안 내는 것이 아니고 깜박 잊어버리고 못 내는 수가 더 많아요.” “대차 그라기는 그라것네! 그란디 세금이 전부 을마여?” “주민세와 재산세 모두 합쳐 3만 9천 6백 원이네요.” “그래~잉! 그라문 그것을 은제까지 내야 되야?”

 

“원래는 10월 말 일까지인데 이제 11월이 되었으니 이달 말까지라도 내셔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그라문 그것은 으따가 바쳐야 되야?” “고지서 납기일이 지났으나 읍사무소에 가셔서 재발급을 받은 다음 우체국에 내시면 되요. 읍내에 나가기 귀찮으시면 저를 주셔도 되고요.”

“그라문 을마를 주라고?” “3만 9천 6백 원이니 4만원 주시면 잔돈하고 영수증은 내일 가져다 드릴게요.”

 

“그라문 그라까?”하시더니 갑자기 “아이고! 바쁜 양반 심바람 시키문 미안한께 내가 갖다 와야 쓰것네!” “아니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셨어요?”

“나도 시내 나가서 볼 일도 잔 있고 그란께 내가 갖다 와야 쓰것단께! 그란디 옷은 뭣을 입고 가야 쓰까?”

 

“공과금 납부하시는데 무슨 옷이 필요해요? 그냥 평상복 입고 나가시면 되지요.”

그 순간 빙긋이 웃고 계시던 영감님께서 가만히 손으로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내더니 귓속말로 “요새 저양반이 존 옷이 생겼단 마시!”

“예~에! 좋은 옷이 생기다니요. 무슨 옷이 생겼는데요?”

“지난번 추석 때 며느리들이 요새 유행하는 이쁜 옷 안 있는가? 그것을 사다줬는디 한 번도 못 입어 봤어! 그랑께 그 옷이 입고 싶은 갑구만!”하신다.

 

“할머니! 기왕에 읍내에 나가시려면 고운 옷으로 예쁘게 입고 나가세요.”하였더니 마치 열여덟 아가씨처럼 들뜬 표정으로 변하시더니“참말로 그라고 입고 가도 괜찬하까?”

 

“일하실 때는 아무렇게나 입더라도 읍내에 나가실 때는 예쁘게 하셔야지 옷 아껴 놓으면 아무 쓸모가 없잖아요. 혹시 알아요? 예쁘게 하고 나가시면 남자 친구라도 생길지!”하였더니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아니여! 내가 이 나이에 남자 친구가 생기문 뭣하껏이여!” 한사코 손 사레를 치시는 할머니는 아직도 소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닐까?

 

"무슨 옷을 입으까?"

 

 

 

 

 

42071

 

 

'따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 친구의 선물  (0) 2012.11.25
휴대폰 주인을 찾습니다.  (0) 2012.11.17
두개의 보청기  (0) 2012.11.03
세 번째 전화  (0) 2012.10.28
벌 소동  (0) 2012.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