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너 내 아들하자!"

큰가방 2008. 4. 26. 20:24
 

“너 내 아들하자!”


4월의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매일 더 따스하고 포근해지자 길가에 화사하게 피어있던 벚꽃이 젊은 연인이 타고 있는 승용차가 지나 갈 때나, 관광객을 태운 대형버스가 지나갈 때나, 시골들판을 향하여 털털거리며 경운기가 지나갈 때나 하얀 꽃잎이 꽃눈으로 변하여 우수수 쏟아지다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휘날리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하얀 나비 두 마리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벚꽃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듯 날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하지 못하였는지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어느새 전남 보성 회천면 벽교리 명교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맨 위쪽 집에 등기로 도착된 조금 두툼한 대형봉투 하나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가 “어르신! 계세요?”하였더니 방문이 열리면서 영감님께서 반갑게 웃는 얼굴로 “내 약이 왔는 갑구만 그래 고생했소!”하셨다. “어르신은 무슨 약을 드시는데요?”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걸음발을 잘 못한단 말이요. 그래서 쪼끔 걸어 댕기면 땅에서 내 발을 잡아당기는 것 같이 아파서


통 바깥일을 못하것어!” “어르신 나이 또래는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하셔서 골병이 들어 그러실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들한테 말을 했드니 며느리가 약을 지어서 보내준디 그 약을 묵고 나서부터 이라고 돌아댕기기가 편하드랑께!” “잘하셨네요. 그러면 자녀는 몇 남매나 두셨는데요?” “내가 딸이 넷이요. 그란디 딸 넷을 낳고 난께 그 뒤로 애기가 안 생겨! 그래서 아들은 하나 낳아야 쓰꺼인디! 하고 고민했는디 내가 50살이 다 된께 갑자기 우리 집사람 한테 애기가 들어섰네.


그래서 기왕에 애기가 들어섰응께 아들을 낳으문 좋으 꺼인디 했는데 참말로 아들을 낳았어! 그란디 아들을 낳고 본께 깝갑하드란 말이요.” “어르신이 바라던 아들을 낳아 잘된 일인데 무엇이 그렇게 답답하셨어요?” “생각해 보씨요! 내가 젊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으문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업제~에! 안 그라것소? 그란디 낼 모레문 50살이 다 되어간디 아들을 낳아놓고 본께 이것을 고등학교나 보내놓고 죽을라냐? 으짤라냐? 걱정이 되드라고! 그래도 기왕에 아들을 낳았응께 우추고 해서라도 대학교라도 마치고 나서


내가 죽어야 쓰꺼인디 그런 생각을 하다본께 밤이문 잠이 안와!” “위에 누나들도 있고 어머니도 계시는데 그런 걱정을 하셨어요?” “아무리 누나들이 있다고 해도 부모 할 일 따로 있고 누나들 할 일이 따로 있는 법인디 아들만 낳아놓고 내가 죽어불문 자식은 뭣이 될 것이여?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는디 아직까지 안 죽고 살다본께 아들 덕을 많이 보고 있그만!” “아드님이 무엇을 하시는데요?” “우리아들이 촌에 살았어도 머리는 쪼금 있었든 모양이데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시험을 봤는디 그냥 합격이 되어서 지금 목포서 근무하고 있는디 어느 날은 지 색싯감이라면서 이쁜 아가씨를 데리고 왔데! 그란디 아가씨가 얼마나 상냥하고 맘에 들든지 두말도 안하고 ‘얼른 결혼식 올려라!’하고 장가를 보내놓고 난께 인자는 내 할일을 다 했다! 싶드란 말이요.” “모든 일이 어르신 바라던 대로 잘되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라고 우리 아들도 나한테 잘한디 며느리가 더 잘해! 다달이 우리 두 늙은이 용돈도 보내주고 약도 안 잊어 불고 지어 보내고


한달에 한두 번은 꼭 찾아와서 집안일도 도와주고 안 그래도 이쁜 사람이 왜? 그라고 이쁜 짓만 골라서 하는지! 헛! 헛! 허!” “어르신! 그럼 금년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내 나이? 인자 팔십 네 살이여!” “그러면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말씀 낮춰하세요. 어르신이 자꾸 존댓말을 쓰시니까 저도 불편하거든요.”하였더니 내 얼굴을 찬찬히 보시던 영감님께서 갑자기“그러면 너 내 아들하자! 내가 아들이 하나라서 조금 서운했는데 너 같은 아들 하나만 더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봄은 녹차 밭에도 밀 밭에도 똑 같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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