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보름 만에 도착한 소포?

큰가방 2008. 5.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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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만에 도착한 소포?


4월에 접어들자마자 살랑살랑 봄바람이 갖가지 예쁜 물감을 여기저기 마구 뿌리고 다녔는지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이 가득 담겨있는 우편물을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도로가의 벚꽃나무에는 어제보다 더 밝고 환한 벚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오가는 길손들을 반겨주고 있으며 길가에 길게 늘어선 노오란 유채꽃밭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하얀, 노란 나비 몇 마리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인사하러 다니는데 아주 조그만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름모를 잡초들의 노란, 빨강, 가지, 잉크 색 꽃들이 봄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도 시골의 들녘에서는 쪽파를 수확하는 아낙네들의 바쁜 손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쪽파수확이 끝난 밭에 다른 작물을 파종하기 위하여 로터리를 치는 커다란 트랙터의 힘찬 엔진소리가 넓은 들판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봄은 꽃과 나비가 사랑을 속삭이는 사랑의 계절! 봄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처녀 총각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젊음의 계절! 봄은 잠자던 대지를 깨우고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는 준비의 계절!”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여기저기 우편물을 배달하다보니 나는 어느새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녹차(綠茶)를 많이 재배하는 양동마을에 접어들어 마을 첫 번째 골목 끝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께 소포하나를 배달하려고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막 ‘할머니!’하고 부르려는 순간 갑자기 골목 어귀에서 “아제~에! 나 여깃어!”하며 할머니께서 한손에 호미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오고 계셨다. “할머니! 제가 올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아침에 전화했어도 받지 않으시던데!”


“아이고! 내가 그것 몰르것어?” “그런데 왜 호미는 들고 다니세요? 그냥 밭에 놔두고 다니셔도 되는데.” “참! 그런가? 봄이 된께 녹차 밭에 풀들이 말도 못하게 질어싸서(자라나서) 그것 좀 매고 있는디 아제가 지내가드만 그래서 쫓아왔제~에! 그란디 호맹이는 생각도 못하고 들고 왔네!” “녹차 밭 관리하기 힘드시지요? 더군다나 작년 농약 녹차 때문에 타격이 크실 텐데!” “그래도 할 수 없제!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괜찬하껏이여! 그란디 우리 집 소포왔제?” “소포 올 줄 어떻게 알고 계세요?”


“내가 으째 몰라? 그것이 한 보름 만에나 온 갑네!” “예~에? 소포가 보름 만에 와요? 할머니 요즘은 안 그래요. 어제 보냈으면 오늘 도착하는데 그러세요!” “아니여! 참말이랑께 그래쌓네!” “여기보세요! 어제 서울 양천우체국에서 접수한 소포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도착하면 이틀 밖에 안 걸렸는데 그러세요?” “그것이 아니고 내 핸드퐁하고 지갑이 한 보름 만에 주인 찾아 온 것 같다 그 말이여!” “예~에? 휴대폰을 어디에 두셨기에 보름 만에 찾아와요? 혹시 어디서 잊어버리셨어요?”


“그것이 아니고 먼자 참에 부산 우리 작은 아들집에 가서 며칠 있다 대전에 있는 딸집으로 가면서 지갑하고 핸드퐁을 놔두고 갔어! 그래서 작은 아들한테 ‘얼렁 누나 집으로 부쳐라!’그랬는디 암만 기달려도 안 오데 그래서 그냥 서울 큰아들 집으로 갔는디 내가 서울 가 버린 다음에 그것이 대전 딸집으로 보냈는 갑드만 그래서 딸한테 ‘얼렁 큰오빠 집으로 부쳐라!’그랬는디 암만 기달려도 안 와! 그래서 나는 집으로 와 부렇는디 그라고 난께 딸이 그것을 즈그 큰오빠 집으로 보냈는 모양이여!


그래서 다시 큰아들한테 ‘얼렁 잔 보내라!’그랬드니 어지께 보냈다고 연락이 왔어!” “그랬어요? 그러면 휴대폰과 지갑이 할머니 따라서 부산으로 대전으로 서울로 여행 다닌 셈이네요!” “그런가? 그란디 뭣이 들어서 이라고 소포가 크까?”하며 소포를 풀어보았는데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휴대폰과 지갑 그리고 상의에 예쁜 꽃이 그려진 할머니의 봄옷이 한 벌 들어있었다. “할머니 휴대폰하고 지갑 자녀들 집에 놔두고 오기를 잘하셨네요! 그 덕분에 이렇게 예쁜 옷도 한 벌 생겼잖아요.” 


 *옥수수 밭 잡초를 뽑아내는 시골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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