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술이 더 좋아!"

큰가방 2008. 5. 24. 17:33
 

“술이 더 좋아!”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 “잉? 우체국 아제가 벌써 오셨네! 우리 막내딸이 엊저녁에 오늘이 어버이날이라고 뭣 사서 보냈다고 전화했드만 얼렁도 와부렇네!”오늘은 매년 한번씩 돌아오는 어버이날이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고향의 부모님께 자녀들의 정성이 담긴 크고 작은 선물을 보내와 평소보다 3배가량 많은 5~60개 정도의 소포를 배달해야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원산마을에 접어들어 가운데 쯤 살고 계시는 영감님 댁 마당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자


마당 한쪽에서 무를 다듬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벌떡 일어서더니 활짝 웃으며 하신 말씀이다. “그란디 아제! 으째 이라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가 몰르것네!” “저기 좋은 의자는 놔두고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시니까 허리하고 다리가 아프지요. 앞으로 의자 아끼지 마시고 편하게 앉아 일하세요!” “그라고 본께 참말로 그라네! 그랑께 미련한데는 약도 없는 것이여! 담부터는 의자 놓고 앙거서 일을 해야 쓰것네 잉!” “그런데 오늘은 소포가 세 개나 왔네요! 막내 따님이 맛있는 것 보낸다고 하던가요?”


“맛있는 것이 을마나 있것어? 우리 심심할 때 묵으라고 엿하고 사탕. 속옷 한 벌씩 사서 보냈다고 하드만! 아제! 내가 늦게사 우리 막내딸을 가져갖고 이것을 지워야 쓰껏인가 말어야 쓰껏인가 꺽정을 많이 했는디 그래도 낳아놓고 본께 그 딸이 우리를 젤로 많이 생각한단께!”하며 기쁜 웃음을 감추지 못하시더니 “그란디 아제는 딸이 없다고 그랬제? 그라문 생각해줄 사람도 업으껏인디 으째사 쓰까?” “앞으로 며느리가 들어오면 딸처럼 많이 생각해 주겠지요.”하였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그래도 며느리하고 딸하고는 다른 것이여! 그랑께 지금이라도 딸 한나 맹글제 그래!” “아이고~오! 할머니도 참! 제 나이가 몇인데 이제 딸을 만들어요!”하는 순간‘부르릉’소리와 함께 영감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어르신! 밭에 다녀오신 길인가요?” “인자 쪼금 더 있으문 감자 캐야 된께 부지런히 밭에도 댕겨보고 박스도 준비해 놔야 쓰꺼 아닌가? 올해는 다행히 감자 값도 좋다고 그란디 우리 감자 캘 때는 어쩔란가 모르것네. 그란디 우리 딸이 보낸 선물 갖고 왔는가?”


“선물이 한개도 아니고 세 개나 왔네요.”하며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소포를 꺼내 마루에 올려놓았더니 할머니에게“뭣하고 있어? 이것 잔 얼렁 뜯어 이 사람 맛 좀 보라고 하제!” “오~오! 참! 그러네! 내가 깜박 잊어 불고 있었네!”하며 무 다듬던 칼로 소포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잘라내더니 “이것이 호박엿이구만! 아제! 이것 맛 좀 봐!”하더니 다른 소포를 뜯어“이것이 사탕이구만! 아제! 이것도 맛 좀 봐!” 하며 호박엿과 사탕 한 주먹씩을 나에게 건네셨다.


“이것은 막내 따님이 어르신 드시라고 보낸 것인데 제가 먹으면 되겠어요? 놔두셨다 심심할 때 드세요!” “와따~아! 첨 보것네! 그것 몇 개 집어 줬다고 우리 묵을 것 읍간디 걱정도 말고 아제 호게비(호주머니)에 너 갖고 댕김서 심심할 때문 자셔!”하시는데 영감님께서 은근한 목소리로 “자네 술 한잔만하고 갈랑가?”하고 물으셨다. “어르신 지금은 술 마시면 안 돼요!” “그라문 은제 마실라고?” “우편물 배달 모두 끝나고 우체국에 오토바이 세워놓은 다음에 마실게요.”


“뭐시  으짠다고? 에끼 이사람! 그라문 술을 안 마신다는 말이구만!” 그러자 할머니께서 “와따~아! 저라고 바쁜 양반한테 술 마시란 소리가 나오요? 나와?” “그란디 내가 우리 딸 한테 서운한 것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선물이 한개도 오지 않았는데 세 개나 받았으면서 무엇이 서운하세요?” “내가 술 좋아한께 좋은 술이나 한 병 보내줄 것 아니여! 그란디 사탕이나 보내준께 그것이 서운하단 마시!” “그것은 모두 어르신 몸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까 서운하게 생각하지마세요.” “그래도 나는 술이 더 좋은디 으짜껏인가!”

 

 

 지난 2월 차가운 날씨 속에 파종하였던 봄 감자가 무럭 무럭 자라나 이제 수확이 한창입니다.

 

 

37637

 

'빨간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하수도 사용요금  (0) 2008.06.07
부부싸움하려면  (0) 2008.06.01
"오천 원만 받어!"  (0) 2008.05.17
보름 만에 도착한 소포?  (0) 2008.05.10
"사탕 한 개만 더 줘!"  (0) 2008.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