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상하수도 사용요금

큰가방 2008. 6. 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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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수도 사용요금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이 담겨있는 우편물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로 배달하기 위하여 싱그러운 가로수 길을 천천히 달려가는데 푸름이 가득한 농촌 들녘에는 감자를 수확하는 아낙네들의 분주한 손길, 수확한 감자를 박스에 담아 싣고 도시의 공판장으로 떠나는 대형트럭, 모내기 할 논에 로터리치는 커다란 트랙터의 힘찬 엔진소리. 그리고 누렇게 잘 익은 보리를 콤바인을 이용하여 수확하는 농민들을 보며 모처럼 시골에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시골마을 도로변 늘 그 자리에 서서 하루에 한번 주인이 다녀가기를 기다리는 빨간 우체통 문을 열었는데 편지는 한통도 들어있지 않고 전기, 전화, 유선방송 시청료를 동전이 빠지지 않도록 돌 돌말아 꼭 묶어 넣어둔 비닐봉지 두개만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본 순간“빠른 것이 세월이라더니 계절의 여왕 5월이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말일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고 있구나! 그리고 모레부터 무더운 6월이 시작되겠지?”하며 전남 보성 회천면 벽교리


명교마을 두 번째 골목길에 접어들어 우편 수취함에 우편물을 넣어두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아제! 아제~에!”하고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뒤 돌아보았더니 골목 맨 윗집에 살고계시는 할머니가 헐레벌떡 나를 향해 달려오고 계셨다. “할머니! 힘들게 달려오지 마시고 그냥 거기 서 계세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하였으나 내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내 옆으로 달려와 도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아이고~오! 우체부 아제 만나기 참말로 힘드네!”하셨다.


“할머니! 맛있는 것 주려고 그렇게 저를 부르셨어요?” “늙은이가 혼자 산디 맛난 것은 뭔 맛난 것이 있것어? 심바람이나 시킬라고 지금까지 아제를 지달리고 있었제!”하더니 “어지께부터 아제를 잔 만날라고 하루 종일 지달렸는디 암만 지달려도 안 오데! 그래서 오늘은 안 올란갑다. 틀렸는갑다. 하고 마늘밭에 가서 일을 쪼깐하고 있응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데! 그래서 쫓아왔는디 은제 온지도 모르게 내려가고 있어서 아제! 아제!’하고 불렇는디 ‘웽’하고 가불데 을마나 서운하든지!”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할머니! 저희들이 평소에는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여기 오는데 어제는 우편물이 많아 6시가 넘어서왔어요. 그리고 늦다보니 자연히 서둘게 되어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나 봐요! 그래서 화나셨어요?” “아니~이! 화 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안 지달리문 잘 만나진디 지달리문 이상하게 안 만나지데!” “할머니 저희들 기다리기 귀찮으시면 돈하고 고지서를 봉투에 넣어 저쪽 도로가 우체통 있지요? 거기에 넣으시면 되요!” “누가 그것을 모르고 있간디!


그란디 전기세랑 전화세가 을마나 나왔는지 모른디 우추고 거기다 넣으껏이여?”하며 답답한 표정을 짓더니 입고 있는 몸 빼 속주머니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무언인가를 부스럭거리며 꺼내“아제 이것이 뭣인가 잔 봐!”하고 내미셨다. “이것은 상하수도 사용요금인데요!” “그래~에! 그란디 을마나 나왔어? 내가 지난달에 으디를 잔 갔다 오니라고 그것을 못 냈는디 이달치 까지 합치문 상당히 많이 나왔으껏이여! 너머나 많이 나왔으문 어째사 쓰까?”하며 만 원짜리 두장을 내밀며


“이것 갖고 될랑가 몰르것네! 하여튼 아제가 손해보문 안된께 잘 보고 갖고 가 잉!” “두 달 요금 모두 해서 280원이니까 3백 원만 주시면 되요!”하였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잉? 뭔 소리여 3백 원 뿐이 안 된다고? 참말로 홋 3백 원 뿐이 안 되야?” “한달에 백 4십 원씩. 두 달이니까 2백 8십 원이 맞지요? 그러니까 이 돈은 도로 가져가시고 3백 원만 주세요!” “그랬어? 나는 돈이 한 3만원이나 나왔는지 알았는디! 그란지 알았으문 아제 안 지달리고 다음달 것하고 같이 내도 되꺼인디 그랬네!”


 * "아이고 아제 만나기 힘드네!"

 

 *요즘 시골은 모 심기가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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