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비행기표 두장

큰가방 2008. 6. 1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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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표 두장


오늘은 전남 보성 회천면소재지 우편물을 배달하는 날이다. 면소재지는 녹차(綠茶)밭과 율포 해수욕장을 연계한 관광지다 보니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상당히 북적거릴 때도 있지만 여전히 마을 주민들은 농업(農業)이 생계의 수단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농번기에는 밭에 나가 감자 캐랴, 감자 캐낸 밭에 콩이며 참깨 심으랴. 논에 모심으랴, 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오늘도 나는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배달하기 위하여 면사무소 뒤 골목길을 천천히 올라


가운데쯤에 살고 있는 영감님 댁 대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마당으로 들어가“계십니까?”하고 큰소리로 불렀더니 주방문이‘드르륵!’열리면서 “어이! 나 여깃네! 안 그래도 자네 지달리고 있었는디 마침 잘 오셨네! 그란디 점심식사는 하셨는가? 지금 밥 묵고 있는디 안 자셨으문 이리오소! 같이 묵게!”하며 나를 반기셨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1시 반을 가르치고 있었다. “점심은 이미 먹었어요. 그런데 오늘 식사가 늦으셨네요. 시간이 오후 1시 반인데!”


“밭에 가서 감자 잔 캐고 난께 시간이 이라고 가부네!” “감자는 많이 나왔어요?” “올해 감자 클 무렵 날씨가 조금 쌀쌀한데다 가물어서 감자가 그리 안 굵어! 그랑께 많이 나왔다고 해도 몇 박스 안 되드만!  그란디 우리 아들이 보낸 비행기표는 갖고 왔는가?” “아드님이 등기로 보낸 것을 보면 비행기표 같기는 한데 내용은 잘 모르겠어요!” “그것이 비행기표여! 그란디 여그서 광주까지 차비(車費)는 안 보냈든가?” “차비요? 무슨 차비를 말씀하시는데요?”


“아니~이 광주서 서울까지는 비행기표가 있응께 비행기 타고 간다고 하제만 여그서 광주까지는 버스를 타고가야 쓰껏 아닌가? 그랑께 차비도 보내야제!” “글쎄요? 편지봉투 안에 혹시 수표 들었는지 확인해보세요!” “서울까지 두 내외를 오라고 불렀으문 차비랑 해서 보내야제 그냥 비행기표만 달랑 두장 보내고 말었구만! 그라문 광주까지 버스타고 가서 또 공항까지 택시타고 가야 쓰껏인디 그 차비는 누가 주껏이여?” “아이고~오! 어르신은 욕심도 많으셔! 아니 서울까지 비행기표 두장 보냈으면 됐지 무슨 차비를 또 보낸답니까?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누가 부모님 서울 오시라고 비행기표 보낸 아들 있는지!” “지가 오라고 해서 가는 것인디 내 돈 들여서 갈 것인가?” “무슨 일로 가시는데요?” “우리 아들이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되야서 반년을 집에서 놀았어! 그라다 서울에 있는 회사로 취직해서 갔는디 가문 묵고자고 할 데가 있어야 쓰껏 아닌가?”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없었나요?” “그렁께 내말 들어봐! 그래서 서울 즈그 누나 집에 당분간 있으라고 쌀도 보내고 김치하고 반찬거리도 만들어서 보냈는디


아! 이것들이 자꼬 싸운갑서!” “부모님이 그렇게 잘하시는데 왜? 싸워요?” “내가 알것는가? 누나는 누나라고 동생한테 안 질라고 싸우고 동생은 그래도 머스마라고 누나를 해 볼라고 싸왔는 갑데!” “그러면 장가를 보내면 좋을 텐데요!” “아! 이 사람아! 장가는 혼자 가는가? 색시가 있어야 장가를 가든지 말든지 하제! 그란디 지난번에 전화가 왔어! 누나 하는 말이‘내가 꼴도 보기 싫응께 나가라!’그런다고 전세방 하나 얻을랑께 돈 잔 보내주라고!” “그래서 보내주셨어요?”


“으차껐인가? 아들이 방 얻는다는데 도와줘야제! 그래서 내가 돈 좀 보내주고 즈그 누나가 쪼금 보태고 해서 아들 직장 근처에 방을 얻었다고 구경하라고 나를 부른거여!”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친정동생 꼴 보기 싫어 쫓아낸 누나가 왜? 전세방 구하는데 돈을 보태줬을까요? 혹시 아드님 애인(愛人)이 생겨 시누이 될 사람 어렵다고 미리 전세방을 구해 준 것 아닐까요?” “자네 말을 들어본께 참말로 그런 것 같기는 하네! 잉! 그란디 제발 아들 놈 애인 좀 생겨 장게 좀 보냈으문 좋것네!”      


 

 

 *고향가는 길은 늘 마음이 설레입니다. 전남 회천 객산, 농소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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