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큰아들이 해야 할 밀

큰가방 2008. 7. 5. 19:34
 

큰아들이 해야 할 일


“여보세요! 김영민 씨 댁인가요?” “잉! 그란디 누구요?” “어르신 안녕하세요? 여기 보성우체국입니다. 그런데 혹시 김종오 씨라고 아시겠어요?” “김종오? 종오는 우리 작은아들인디 으째 그란가?” “그러세요! 소포가 한 개 왔는데 주소는 어르신 댁이 분명한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서 혹시나 하고 전화 드렸어요. 그럼 소포는 오후 2시쯤 어르신 댁으로 배달해 드릴게요.” “그래! 그란디 이라고 비가 많이 오고 있는디 갖고 올 수 있것는가? 차라리 낼이나 갖고 오제 그런가?”


“오후에는 비가 그친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어젯밤 늦게부터 오락가락하던 장맛비는 아침이 되자 어디선가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더니 천둥 번개와 함께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으나 내가 오늘 배달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싣고 우체국 문을 나설 때쯤이 되자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슬비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하늘도 비 오는 날이면 집배원들이 고생하는 줄 알고 이렇게 비가 그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상율마을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길게 이어진 농로 길을 달려 동촌(桐村)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요란한 천둥 번개 소리와 함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또 다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고! 동촌마을에 거의 다 와서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들판에서 비를 만났다면 어쩔 뻔 했을까?”하는 아찔한 생각을 하며 마을의 김영민 씨 댁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 처마 밑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적재함에서 조그만 소포를 꺼내고 있는데


방문이‘드르륵’열리면서 영감님께서 마루로 나오더니“비가 이라고 많이 퍼 붓고 있는디 왔는가? 그랑께 내가 낼이나 갖고 오라고 했는디!”하며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마을에 거의 다 와서 비를 만났어요. 어르신! 그리고 만약 내일 비가 더 많이 오면 어떻게 하겠어요? 요즘 같은 장마 때는 우편물을 그때그때 배달하지 않으면 더 힘이 들거든요.” “그렇기는 하겠네! 하지만 미안해서!”하며 내가 건네는 소포를 받아들더니 “아이고! 우리 집은 꺼구로 되얏어!”하며 섭섭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르신! 무엇이 거꾸로 되었다는 말씀이세요?” “종오가 우리 작은아들이여! 그란디 큰아들이 해야 할 일을 우리 집은 작은 아들이 하고 있응께 하는 말이여!”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세요?” “이것이 내 약(藥)이시 그란디 부모를 생각할라문 큰아들이 약도 지어서 보내줘야 쓸 것 아닌가? 그란디 큰아들은 가만있고 작은 아들이 약을 지어 보내주고 있으니 거꾸로 된 것 아닌가?” “큰아드님은 무엇을 하시는데요?”


“큰아들? 큰아들은 도시에서 직장생활하고 있어!” “작은 아드님은 무엇을 하는데요?” “작은아들은 장사하고 있는디 내 용돈도 작은아들이 보내고 있제 큰아들은 통 생각을 안 한단 마시!” “그럼 큰아들은 도시의 큰 회사에서 근무하시는 가요?”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라고 그러데!” “어르신도 생각해 보세요. 요즘 기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으니까. 모든 것이 불경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도시의 큰 회사가 아니라면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회사가 많다고 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큰아드님도 그런 사정 때문에 어르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네 말을 들어본께 그러기는 한디 그래도 내 맘은 다르단 말이시!” “그래도 어르신은 작은 아드님이라도 생각해 주는 아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자식들한테 잘해준 것도 없는디 뭣을 을마나 섭섭하게 생각하것는가?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제!”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동안 억수같이 퍼 붓던 비가 서서히 멈추고 있었다. 

 

 

 동율리 동촌(桐村)마을입니다. 날씨 때문에 사진이 선명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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