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여름이 행복한 사람들

큰가방 2008. 7. 12. 22:20
 

여름이 행복한 사람들


7월 두 번째 주로 접어들자마자 그동안 오락가락하던 장마전선이 멀리 물러갔는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로 변하더니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폭염으로 변하여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나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데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도로 옆 가로수들은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가지를 쭉 늘어뜨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난 개망초 꽃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거리며 오가는 길손을 반겨주고 있었다.


“해마다 뜨겁고 무더운 날씨는 7월 말쯤에서 시작되는데 금년에는 유난히 무더위가 빨리 찾아와 힘들게 하는구나! 이런 현상도 모두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며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마산마을에 접어들어 등기로 도착한 면세유(免稅油)카드를 배달하려고 이집 저집 마을사람들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마을이 텅 비어있지? 모두 다른 곳에 놀러가셨나?”하는 생각을 하다 “참! 오늘처럼 무더운 날 집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하고


마을입구 쪽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커다란 당산나무 아래 정자(亭子)로 갔더니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다“어이! 어서와! 날씨도 징하게 더운디 고생해 쌓네! 이리와 아이스크림 한개 묵어보소!”하였는데“아이스크림 다 묵어 불고 읍는디! 으째야 쓰까? 아제가 쪼그만 빨리 왔으문 좋으껏인디 그랬네 잉!” “잉? 그것을 그새 다 묵어 부렇어? 그라문 수박이라도 한 쪼각 하소!”하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반기셨다. “웬 아이스크림하고 수박인가요? 혹시 장사가 왔다 갔나요?”하며


정자에 걸터앉아 수박을 한입 베어 무는 순간 하얀색 아반테 승용차가 정자 앞에서 멈추더니 젊은 아주머니가 차창을 열고 “아버님! 저 그만 가 볼게요!”하자 마을 영감님께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오냐! 왔다 간께 고맙다! 조심해서 찬찬히 가그라 잉!” “예! 아버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하고 승용차가 마을을 빠져나가자 “금방 젊은 새댁이 저 영감님 며느린디 날씨가 덥다고 아이스크림하고 수박을 사 갖고 와서 동네사람들 잡수라고 내 놓고 가네!”하고 설명하였다.


“그랬어요? 정말 고마운 일이네요!” “그란디 아제! 이따 저녁에 시간 있는가?”하고 마을 할머니께서 묻자 옆 할머니가“편지 아제 시간 있으문 뭣할라고 그래? 혹시 데이트할라고 그란가?”하시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신 할머니“와따아! 내가 편지 아제하고 데이트잔 하문 으찬단가? 별 소리를 다 해쌓네!”하더니 “저 영감님 아들하고 며느리가 마을 사람들 자시라고 되야지(돼지) 괴기하고 술을 사갖고 와서 회관 냉장고에 넣어 놨는디 이따 저녁에 동네 사람들 모두 모이문 한잔씩 하꺼여!


그랑께 아제도 시간이 있으문 이리 와서 자셔! 알았제?” “대차 그라문 좋것네 자네 이따 시간 있으문 우리 동네로 와! 알았제?” “어르신! 제가 저녁때는 모임이 있어 그곳에 가야하는데 지금 먹으면 안 되나요?” “안될 것도 없제만 그래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을 때 묵어야 쓸 것 아닌가? 그라문 괴기는 아직 요리도 안하고 냉장고에 그대로 있응께 대신 술이라도 한잔 하고 갈란가?” “이렇게 무더운 날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술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세요!”하였더니


옆 할머니께서 “그랑께 술은 자시지 말고 여그 수박이라도 많이 자시고 가랑께”하는 순간 마을 영감님 휴대폰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오냐! 나다! 그래 잘 있었냐? 덥기는 덥제 만 으짜껏이냐? 그래도 동네 앞에 나와 있으문 시원한께 괜찬하다! 내일 올란다고? 이라고 더운디 우추고 올라고 그라냐? 그래 알았다! 올라문 조심해서 오그라 잉!”하고 전화를 끊더니 “우리 아들이 뭣을 잔 사갖고 낼 올란다고 전화했네!”하시자 마을사람들이“또 뭣을 사갖고 올라고 그라까?”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마산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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