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할머니의 카네이션

큰가방 2005. 3. 19. 21:02
 

할머니의 카네이션 

2001.05.08


아침까지도 흐리기만 하던 날씨가 맑은 하늘을 드러냅니다. 오늘은 어버이날 아침 출근 시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다니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유난히 좋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따라 배달할 소포와 등기 우편물도 많기만 합니다. 모두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 같아 우편물은 많으나 기분은 좋기만 합니다. "할머니 소포가 왔는데요! 도장 한번 찍어 주실래요?" "응? 어디서 소포가 왔어? 나한테 소포 올 데가 없는디!"


"경기도 안양에서 김상열 씨가 보내셨는데요!" "우리 사위가 보냈구만 뭣을 보냈으까?" 도장을 가지고 오시면서 할머니께서는 자꾸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시며 저에게 자꾸 물어보십니다."뭣을 보냈으까?" "아마 어버이날이라고 선물을 보내신 모양이네요!" "선물? 무슨 선물을 보냈어? 생전 이런 일이 없는디 이상하다!" 할머니께서는 자꾸 이상하다는 듯 저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할머니 제가 한번 풀어볼까요?"


"한번 풀어 보씨요!" 그래서 소포박스를 풀어보았더니 카네이션 한 송이와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할머니! 카네이션이 왔는데요!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하고 예쁜 카드도 한 장 왔고요!" "이~잉? 그랬어? 장모한테 꽃을 보내? 즈그 부모나 생각하제!" "할머니 사위도 자식은 자식인데 장모님께 꽃을 보내드리는 게 이상하세요?" "아니 미친놈이 즈그 부모나 생각하제 장모까지 꽃을 보내 뭣 할라고?"


하시더니 갑자기 배꼽을 붙잡고 웃으시는 겁니다. "아니! 할머니 왜 갑자기 웃으세요?" 하고 정색을 하고 물었더니 "우리 사위 하는 것이 우스워서 그래!" 하시는 겁니다. "할머니! 뭐가 우스우세요?" "즈그 부모한테도 잘 못하는 놈이 장모를 생각하는 것이 우스워서 그래!" 하십니다. "할머니 사위가 미우세요?" "아니! 우리 딸한테 들어 본께 즈그 부모한테도 잘못한다. 그라드만 우리 딸이 즈그 부모한테 용돈 좀 드리고 나면


그 꼴을 못 봐서 난리라 그라드만 그란디 나한테 꽃을 보낸께 이상해서 그래!" 하시는 겁니다. "할머니! 그래도 사위가 생각하고 보내신 꽃이니까 그렇게 미워하시지 마시고 가슴에 달아 보세요!" 하는 말에 "기왕에 보냈응게 달아보기는 달아 봐야제!" 하시는 겁니다. "할머니! 꽃 제가 달아드릴게요!" 하고 할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나서 "아이고! 우리 가슴에 할머니 꽃을 다시니까 훨씬 예쁘시네!"


하였더니 "꽃을 달기는 달았어도 어째 기분이 그라요!" 하시는 겁니다. 사위 자식도 자식인데 평소에 얼마나 장모님께 밉보였으면 사위에게 미친놈이라고 하신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우습기도 하고 씁쓰레한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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