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비밀이여! 비밀!"

큰가방 2008. 7. 20. 16:34
 

“비밀이여! 비밀!”


“할머니! 무엇하고 계세요?” “잉! 편지 아제 아니여? 그란디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 “회천면사무소에서 편지를 보냈네요!” “그것이 뭣이까? 내가 눈이 있어야 뭣을 알제! 아제가 잔 뜯어봐! 뭣이라고 했는지!” “할머니 노령연금을 이달부터 매월 8만 천 원씩 통장에 입금시키겠다는 내용이네요.” “그랬어? 참! 오래 살다본께 나라에서 돈 줄 때가 다 있고 세상은 좋은 세상이여!” “그런데 어제는 저 기다리다 말고 어디 가셨어요?” “어지께? 나 암디도 안 갔는디!”


“에이! 거짓말! 어제 제가 할머니 약을 가지고 와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던데요.” “오~오! 그라문 아제가 어지께 내 약 갖다놓고 갔어?”그러니까 어제의 일이었다. 7월 하순이 가까워지면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염은 매일 수은주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어제 보다 더 무덥고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데 평소보다 두 배쯤 되는 우편물 배달하다 보니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도당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오후 5시가 넘어서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여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하였더니 “회천면 회령리 우편배달 담당 휴대폰이 맞습니까?”하고 조금 컬컬한 50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그렇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셨습니까?” “다름이 아니고 제 이름으로 어제 저의 어머니께 조그만 소포를 하나 보냈는데 아직까지 받지 못하셨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 드렸습니다.”하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랬습니까? 그럼 주소와 성명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회령리 삼장마을 김형덕입니다. 그 소포는 저의 어머니께서 오늘 꼭 받으셔야 하는데 지금 오후 5시가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배달이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하며 따지듯이 물었다. “김형덕씨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김형덕씨에게 오늘 소포는 없었고 큰 봉투의 등기우편이 하나 도착되어 할머니 댁에 가보았는데 사람이 아무도 안계시더라고요.” “아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오늘은 아무데도 가지 마시고 집에서 기다리셨다가 소포를 받으라고


제가 신신당부를 하였는데 저의 어머니께서 집을 비우셨다는 말씀입니까? 혹시 다른 집을 저의 집으로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댁이 삼장마을 5반(班) 두 번째 집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하루 이틀 집배원 했던 것도 아닌데 선생님 댁을 모르고 다른 집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할머니께서 하루 종일 저를 기다리셨더라도 방문하는 시간에 집에 계시지 않으면 연락처가 없으니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금도 그 우편물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아닙니다. 선생님 댁 방문이 미닫이 방충망으로 되어있지요?” “그렇습니다.” “방충망으로 된 방문을 열고 방안에 넣어두었습니다. 눈에 잘 띠게 놓아두었으니 방문만 열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할머니의 약(藥)같아 보이던데 약이라면 할머니께서 오늘 꼭 필요하실 것 같고 또 우편물을 받아놓고 안 받았다고 우기실 분도 아니고 해서 방안에 넣어 두었는데 벌써 2시간 이상 지난 것 같은데 약을 못 보셨다고 하시던가요?” “방금 저의 어머니께 휴대폰 전화를 하였는데 못 받았다고 하시던데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다른 곳에 일하러 가신 것이 분명하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방안에 놓아 둔 소포를 못 보았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해 주신 줄을 모르고 언성을 높여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전화는 끊겼는데 “나 암디도 안 갔는디!”하며 시치미를 떼시기에 “그럼 할머니 일하러 가셨다고 아드님께 일러바칠까요?” 하였더니 갑자기 할머니의 얼굴 표정이 변하면서 “아제! 어지께 내가 일하러 간 것은 비밀이여! 비밀! 그랑께 절대 우리 아들한테는 말하지 마! 잉! 알았제?”

 

 

 *고향가는 길은 늘 마음이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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