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커피와 냉수

큰가방 2008. 8. 3. 18:12
 

커피와 냉수


오늘도 늘 나와 함께하는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기쁜 소식, 행복한 소식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우체국 문을 나선다. 전남 보성 회천면 천포리를 향하여 달려가는 왕복 2차선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바다건너 고흥군(高興郡)쪽에는 하얀 솜털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토끼 구름, 엄마구름, 아기구름으로 변하더니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있는데 길가의 가로수 꼭대기에 앉아있는 매미 몇 마리가‘무더운 여름은 이제 그만 물러가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오늘이 8월 1일이니 무더운 여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리고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찾아오겠지?”하며 천포리 묵산 마을의 소포 한 개를 배달하려고 첫 번째 골목으로 접어들자 담 너머로 무엇인가 보고 계시던 80세가 넘은 영감님께서 나를 보더니“벌써 오셨는가? 아이고~오! 날씨도 무지하게 더운디 고생해 쌓네!”하며 반기셨다. “어르신! 날씨가 이렇게 무더운데 담 너머 누구를 기다리고 계셨어요?”하며 50개들이 라면 박스 정도 되는 크기의 소포 한 개를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꺼내 마루에 내려놓자


“밭에 나간 우리 집사람 올 때가 되얏는디 아직 안 오고 있응께 지달리고 있네! 날씨가 이라고 덥고 그랑께 얼렁 와 불제만 뭣을 그라고 오래하고 있는지!”하시자마자 할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큰 소쿠리에 붉은 고추를 가득 담아 마당으로 들어오시더니“우메~에! 이따가 해름에나 갖고 오제 이라고 징상스럽게 더운디 그것을 갖고 왔어?”하신다. “날씨가 무덥다고 우편물 배달을 미루고 있으면 한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조금 무덥더라도 빨리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 깨끗이 씻어야지요!”


“그나저나 빠르기는 빠르네! 어지께 아침에 강원도 우리 동서가 꿀 여섯 병을 보낸다고 하드만 그새 여기까지 와 부렇어! 그랑께 꼭 하루 만에 왔구만! 그란디 자네! 머리에 쓰고 있는 그 모자 좀 벗어 불고 다니면 안 된가? 이라고 더울 때는 벗고 댕기문 좋것드만 편지 배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꼭 쓰고 있데!” “어르신! 오토바이 헬멧은 남이 보기 좋으라고 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쓰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날씨가 무덥더라도 헬멧은 벗으면 안돼요!”


“자네 말을 들어본께 그러기는 한디 그래도 땀을 그라고 많이 흘리면서 쓰고 댕긴께 깝깝해서 하는 말이여!”하시자 수돗가에서 손발을 다 씻은 할머니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 선풍기를 꺼내 오시더니 “아제! 이루 와서 선풍기 바람이라도 쪼금 쬐고 있어! 내 금방 커피 한잔 타 갖고 오께!”하셨다. “할머니! 이렇게 무더운 날은 커피보다 시원한 냉수가 좋아요. 그러니까 커피는 놔두시고 냉수 한 그릇만 주세요!” “그래! 그나저나 우선 그 모자 좀 벗어 불고 마루에 좀 앙거 봐! 내 금방 냉수 갖고 오껏잉께!”


“대차 그라문 좋것네! 우선 이리 좀 앙거있어!”하시는 영감님의 권유를 차마 뿌리칠 수 없어 잠시 헬멧을 벗고 마루에 앉아있는데 냉수를 가져온다던 할머니는 주방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소식이 없자 “아니 바쁜 사람 지달리게 해 놓고 뭣하고 있어?”하고 영감님께서 재촉하시자. “다 되었응께 쪼그만 기달려!”하더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커피에 얼음 몇 조각을 넣은 그릇과 냉수가 가득 담긴 그릇을 쟁반에 담아가지고 나오시더니“영감이 재촉해 싼께 냉커피도 얼렁 안타지네!


맛이 있든지 없든지 시원한 맛으로 그냥 자셔! 잉!”하시자 영감님께서“아니 바쁜 사람 잡아놓고 그라고 지달리게 하문 쓰것어?”하고 역정을 내셨다. “아이고! 사람이 나이 묵으문 성질이 차분해진다고 하드만 우리 영감은 나이를 묵을수록 더 급해지는 모양이여! 내가 커피 타는 시간이라도 편지 아제 선풍기 앞에서 쪼금 쉬라고 늦게 타왔는디 그새를 못 참고 그라고 화를 내고 야단이요?”하시자 금방 풀이 죽은 영감님“나는 냉수만 한 그럭 갖고 올지 알았제~에!”

 

 "날이 너무 뜨구와서 밭 작물이 타들어가게 생겼어! 밭에 물 줄라문 이것을 또 손 봐야제!"  

 *"너무나 무더운 여름은 불러가라!" 나무에 붙은 매미들이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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