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범칙금 고지서

큰가방 2008. 8. 16. 18:12
 

범칙금 고지서


8월 중순이 가까워지는 오늘도 활활 타오르는 붉은 태양은 섭씨 30도가 훨씬 넘은 폭염을 쏟아 붓고 있으나 시골의 들판에는 지난 봄 농부들이 땀 흘려 심어놓았던 벼들이 어느새 고개를 내밀고 조금씩 누런색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도로변 고추밭에서는 빨갛게 잘 익은 붉은 고추를 따느라 농민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한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내가 타고 있는 빨간 오토바이 주위를 맴돌다 푸른 하늘에 떠있는 하얀 조각구름을 향하여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인데도 이렇게 날씨가 무더우니 가을이 우리 곁에 다가오기 싫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며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원서당 마을에서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려고 가운데 골목 끝집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마당으로 들어갔더니“우메~에! 날씨가 징하게도 더운디 편지 아제가 오셨네! 아제! 이것 내가 맛도 안 본 냉커피여 그랑께 먼저 자셔!”하며 마루에 앉아 계신 마을 할머니께서 손에 들고 있던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냉커피가 담긴 대접을 나에게 내미셨다.


“옛말에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했는데 할머니께서 먼저 드셔야지 젊은 사람이 먼저 먹으면 되겠어요?” “와따~아! 지금 또 타고 있응께 꺽정 말고 자셔! 바쁜 양반이 먼저 자셔야제! 그랑께 어서 자셔! 잉!”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었는데 고맙습니다!”하였더니 주방에서 큰 화채그릇에 냉커피를 타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께서 “아저씨! 오늘은 마당까지 들어오신 것을 보면 우리 집에 등기편지가 있나 봐요?”하고 물었다. “별로 반갑지 않은 등기편지가 왔네요.”


“반갑지 않은 등기편지라뇨? 무슨 편지인데요?” “아저씨가 운전하시다 과속을 하셨나 보네요! 경찰서에서 과속 범칙금 통지서를 등기로 보냈거든요.” “그랬어요? 어디서 과속했을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편물을 뜯어보더니 “아~아! 이거요! 지난번에 우리애기 아빠가 낸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리 바쁜지 깜박 잊고 아직 안냈나 봐요.”하자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아니 뭣이 간디 그래~에?”하고 물었다. “지난번에 우리 차로 마을 아짐 몇 분하고 함평 나비축제에 갔다 왔잖아요.”


“그랬어! 그때 내가 갖다오자 그래서 옆에 노인들이랑 몇이 갖다 왔제! 그란디 뭣이 잘못되�어?” “아니요! 잘못된 게 아니고 그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과속단속 무인카메라에 찍혔나 봐요. 그래서 범칙금이 나왔는데 아직 그걸 내지 않고 있으니까 빨리 내라고 독촉장을 보냈네요!” “우메! 그랬어? 그라문 을마나 나왔는디?” “범칙금이 칠 만원이네요!” “우메~에! 우리 땀새 벌금이 그라고 많이 나왔는디 미안해서 으짜까?” “괜찮아요! 우리애기 아빠가 차를 너무 세게 몰고 다니니까 이번에 정신 좀 차리라고 해야지요.”


“그래도 우리 땀세 그라고 벌금을 많이 물문 미안하제~에!”하신 할머니께서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어이! 질부(姪婦) 그라문 내가 그때 같이 갔든 사람들한테 돈을 쪼금씩 내라고 하문 으짜까? 우리는 아무것도 준비 안하고 조카 따라서 편하게 구경 잘하고 왔는디 우리 땀새 벌금이 많이 나왔는디 카만 있으문 쓰것는가?”하자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던 아주머니께서 “모처럼 마을 아짐들 모시고 나비축제에 다녀왔는데 벌금 나왔다고 돈을 걷고 그러면 되겠어요?


이 돈은 운전하는 사람이 잘못해서 나온 것이니까 그냥 두세요!”하자 잠시 또 무언인가 생각하신 할머니 “그라문 다른 데를 한 번 더 갖다 와서 돈을 걷으문 으짜것는가?”하고 물었다. “그런데 요즘 기름값이 너무 비싸 가까운 곳이면 몰라도 먼 곳을 다녀오려면 기름값이 칠 만원도 더 나오겠는데요!”하는 나의 말에 “우메~에! 기름값이 그라고 비싸~아! 그라문 안 되것네 잉! 으째사 쓰까? 미안해셔!”


 *요즘 시골마을에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 붉은 고추 말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도로가에서 금방이라도 죽을 듯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는 나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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