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잃어버린 예금통장

큰가방 2008. 8. 24. 07:52

잃어버린 예금통장


“할머니! 여기 새 통장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아시겠지요?” “우메! 통장 갖고 왔어? 고맙소~오! 무단히 우리 영감이 실수해 갖고 아제 고상을 시키네! 잉!”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실수는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제 새 통장을 만들었으니 통장 잔액 확인하시고 옛날 통장은 사용할 수 없거든요. 통장을 다시 찾더라도 버리시고 앞으로는 새 통장을 사용하세요! 아시겠지요?” “알았어! 고맙소! 잉! 통장을 갖다 줘서!”그러니까 어제의 일이었다.


8월의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하늘에 떠 있는 붉은 태양은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엄청난 폭염을 쏟아 붓고 있는데 시골마을 입구 쪽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서있는 정자나무 꼭대기에 앉아있는 몇 마리의 매미들은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오늘도 “매~앰~맴!”온 마을이 떠나갈 듯 합창하고 있는데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농부들은 들녘에 심어놓은 고추가 어느새 어른의 손가락보다 훨씬 굵고 기다란 붉은 고추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땀을 뻘뻘 흘리며 따내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내가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서동마을 우편물 배달을 끝내고 새로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화당 마을 쪽으로 천천히 달려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편지 아제! 편지아제!”하고 아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길 위 언덕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고 계셨다. ‘이상하다? 요즘은 공과금 납부할 때도 아닌데 할머니께서 무엇 때문에 저렇게 급하게 부르는 것일까?’하고“할머니! 거기 그냥 서 계세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대답하고는


황급히 오토바이를 돌려 달려갔더니 할머니께서는 나를 만나려고 얼마나 빨리 달려오셨는지 옷은 이미 소나기 맞은 것처럼 후줄근하게 젖어있었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지 못해‘헉! 헉!’거리고 있었다. “할머니! 무슨 급한 일이 있어 그렇게 달려오셨어요?” “아제! 혹시 우체국에서 우리 집 갖다 주라고 통장 안 보냈어?” “통장이요? 통장 전해달라는 부탁 받은 일은 없는데요!”하는 순간 할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더니 “아이고! 인자 큰일 났네!”하고 한숨을‘푹!’내쉬었다.


“할머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한숨만 내 쉬지 마시고 차분하게 말씀해보세요!” “우리 영감이 아침나절에 돈 찾아서 병원에 갖다온다고 통장하고 도장하고 주라 그라데 그래서 내 줬는디 우체국 가서 돈을 찾아갖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 받니라고 통장을 오토바이 앞에 째깐한 통 안 있어? 거그다 너놨는 갑서! 그라고 잊어 불고는 병원에서 나와 갖고 가게에 앉아 친구들하고 술을 한잔 했는갑데! 그란디 집이 와서 본께 통장이 없어져 부렇어!” “그러면 도장도 함께 없어졌나요?”


“도장은 그대로 있는디 통장만 없어져 부렇어! 그래갖고 통장 찾는다고 병원으로 가게로 가 봤는디 통장을 찾을 수가 있어야제! 아이고~오! 영감이 물리치료 받었으문 빨리 집으로 와야제 뭣하러 가게는 갈 것이여? 그래서 걱정이 되야 우체국에 전화를 했드니 통장을 다시 맹글어서 편지 아제한테 보낸다고 하드만 안 보냈는 갑구만!” “그러면 통장은 내일 제가 틀림없이 갖다 드릴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란디 그 통장 줏은 사람이 다른 우체국에서 돈을 찾아가 불문 으짜 껏이여?”


“예금한 돈을 찾으려면 통장과 도장 그리고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쉽게 남의 돈을 찾아 갈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우체국에 가문 주민등록증 보잔 말도 안하고 그냥 돈을 내 주든디!” “그것은 할머니 이름과 얼굴을 다 알고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 예금을 인출하려면 신분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돈을 내주는 일이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그라문 아제 만 믿을랑께 낼 틀림없이 통장 갖고 와 잉!”하셨는데 새 통장을 받아들고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환한 표정이었다.

 

*요즘 시골에서는 참깨 대 말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다 말리고 나면 고소한 참깨가 우수수 쏟아지겠지요?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 온 듯 따뜻한 양지쪽에 녹두, 검정 콩, 팥을 말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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