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나! 싸나운 사람 아닌디!"

큰가방 2008. 9. 16. 21:59

“나! 싸나운 사람 아닌디!”


8월의 끝자락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오늘도 섭씨 30도에 가까운 무더운 날씨는 어제에 이어 계속되고 있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여름 사이로 가을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고 있는지 어제보다 조금 더 시원해짐을 느끼게 하고 며칠 전보다 꼬리가 더욱 빨개진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때를 잊고 일찍 피어나 실바람에 한들거리는 빨간, 분홍, 하얀색 코스모스 꽃 사이를 이리저리 맴돌다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향하여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 가득한 우편물을 싣고 시골마을에 배달하러 천천히 달려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리 객산(客山)마을 맨 윗집 우편물을 배달하려는데 길옆에 자리 잡고 있는 비닐하우스의 문이 살짝 열리더니 할머니 한분이 고개를 내밀고 “아제! 나 좀 보고가!”하셨다. “무슨 일이신데요?” “거시기 주민세 좀 받어 갖고 가서 우체국에 바쳐주면 안 되까?” “주민세요! 그런 부탁이라면 언제든지 하세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할머니께서 부탁하시는데 안 들어주면 되겠어요?”하며


빙긋이 웃었더니“그라문 여가 있어봐 잉! 내 금방 우리 집에 가서 갖고 오께!” “아직 준비도 해 놓지 않고 부탁 먼저 하셨단 말씀이세요?” “편지 아제한테 물어봐 갖고‘안돼요!’해 불문 매낄 수가  없응께 그라제~에! 여가 쪼깐 있어! 금방 갖고 오께!” “그러면 제가 저기 윗집에 다녀와 할머니 집으로 갈 테니까 미리 가셔서 준비해 놓으세요!” “잉! 알았어! 그라문 집이 가서 기달리고 있으께!”하고 부리나케 달려가시는 것을 보고 윗집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할머니 댁으로 갔는데 주민세 고지서와 돈을 준비하고 기다리신다던 할머니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 “잉! 쪼깐 기달려봐! 그것이 으디로 가부렇는가 암만 찾아도 없네!” “그래요. 그럼 천천히 찾아보세요!”하였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애기 아부지! 애기 아부지!”하고 영감님을 부르셨다. “어르신은 금방 저쪽에 마을 사람들이 쪽파 씨 손질하고 있는 곳으로 가시던데요!” “아니! 영감이 그것 잔 찾아놓제 또 으디로 가부렇다냐?”하시더니


마을 입구 쪽에 대고 “애기 아부지! 애기 아부지!”하고 큰소리로 부르자 “응! 으째 그란가?”하더니 영감님께서는 천천히 걸어오신다. “거시기 주민세 으따가 뒀소?” “주민세! 거그 으디가 있것제! 지가 으디로 갈 것인가?” “암만 찾아도 읍는디 그래요! 바쁜 편지 아제 잡아놓고 지달리게 하문 쓴다요? 얼렁 잔 찾아보시요!” “거그 으디 찾아봐! 거가 다 있것제!”하고 느긋하게 대답하는 영감님,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암만 찾아도 업는디 그래요!”하며


곧 큰소리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여서“할머니! 천천히 찾아보세요! 그 덕분에 저도 잠시 쉬고 있을게요!”하였는데 그 순간 영감님께서 “여그 편지통에 있을 것이여! 내가 먼자 거그다 넣어 놨응께 찾아봐!”하셨다. 그래서 우편 수취함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주민세 고지서를 꺼내“할머니! 여기 있네요! 삼천 삼백 원만 주세요!”했는데 “그란디 지갑은 으따가 뒀소?”하고 영감님을 향해 물으신다. “내가 지갑을 으따가 둬! 당신이 으따 뒀것제!”


“내가 전화기 옆에 놔 뒀는디 없는디 그래요?” “내가 지갑이 있으문 여가 술집이 있어 술을 마시러 갈 것인가? 뭣 할 것인가? 천상 거그 으디가 있것제!” “와따~아! 편지 아제 바쁘그만! 그것도 으따 둔지도 모르고 뭣하고 있었소?”하셔서 “할머니! 어르신에게 너무 사나움 내지 마시고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하세요!”했는데 내 얼굴을 한번 슬쩍 쳐다보고 방으로 들어가 지갑을 찾아오신 할머니, 나에게 삼천 삼백 원을 건네주시며 억울한 표정으로 “내가 우리 영감한테 그라고 싸납게 말했어? 나! 싸나운 사람 아닌디!”


 

*금년에는 맑은 날씨인지 모든 것이 풍년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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