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없어진 그것

큰가방 2008. 9. 27. 13:50

없어진 그것


“오늘은 다소 쌀쌀한 날씨가 예상되오니 나들이 하실 때 긴 소매 옷을 준비하시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 때문인지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은 어제까지만 해도 무덥기만 하던 날씨와 달리 오늘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길게 이어진 시골의 농로 길을 천천히 달려가는데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나부끼는 억새의 하얀 머리 사이를 빙빙 맴돌던 조그만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흰 장갑을 끼고 있는 내 왼쪽 손등으로 살며시 내려앉더니 오토바이가 달려가도 날아갈 줄 모르고 계속 무전여행(無錢旅行)을 즐기다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군지마을에 접어들어 오토바이를 세우자 아무 인사도 없이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고추잠자리야! 인사라도 하고 가야지 그렇게 날아가면 되겠니?”그러나 멀리 날아간 고추잠자리는 아무 대답이 없고 나는 군지 마을의 두 번째 골목길에 접어들었는데 할머니 한분이 대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아제! 이것 잔 갖고 가 부러!”하셨다.


“그게 무엇인데요?” “재산세제 뭐시것어?” “재산세가 많이 나왔나요?” “을마 안된디 그것 잔 바칠라고 내가 우체국까지 갈라문 힘든께 미안해도 아제가 잔 수고를 해줘! 잉!” “그런 심부름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미안해하지 마세요!”하는데 그때 골목으로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시더니 “우메! 안 그래도 편지 아제를 잔 만날라고 했는디!”하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무슨 일로 저를 만나려 하셨는데요?” “아제 심바람이나 시킬라고 그라제! 쪼깐 있다 우리 집에 잔 들렸다 가문 안 되까?


얼렁 가서 세금 바칠 것 찾아노께!” “그럼 그렇게 하세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을의 우편물 배달을 마친 나는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이상하게 암만 찾아도 그것이 없네!”하신다. “그것이 무엇인데요?” “세금 안 있어? 그것을 내가 여그다 잘 둔다고 했는디 으디로 가부렇단께!”하며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할머니! 재산세와 전화요금은 엊그제 저를 주셨잖아요. 그런데 납부하실 세금이 또 있단 말씀이세요?”


“그것 말고 또 한 개가 있드만 그란디 그것이 으디 가불고 암만 찾아도 업단께!” “그러면 천천히 찾아보세요! 그 동안 저는 마루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게요!”하고 하얀 구름 사이로 손에 닿으면 금방이라도 물이들 듯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제! 암만 찾아도 그것을 못 찾것네!”하신다. “그것이 대관절 무엇인데 그렇게 찾으세요?” “면사무소에서 보낸 세금 안 있어? 그것 말이여!” “면사무소에서 발송한 세금이라면 이번 달에는 재산세인데 이미 납부하셨잖아요! 그런데 또 그것이 남았어요?”


“이번 달에 나온 것 말고 지난달에 나온 그것 안 있어?” “지난달에 나온 것이라면 주민세 말씀이세요?” “잉! 주민세 말이여! 내가 그것을 못 찾아갖고 안내고 있었는디 어지께 으디를 본께 있데! 그래서 인자 아제를 주문 쓰것다! 그랬는디 또 으디로 가부렇는가 암만 찾아도 안보이네!” “그러면 천천히 찾아보시고 다음에 내세요! 그리고 앞으로 공과금 고지서가 나오면 TV나 전화기 옆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놔두세요. 그러면 찾기가 쉬운데 그걸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깊이 숨겨놓으니까 찾기가 힘들잖아요!”


“누가 손대문 으짜게!” “할머니 댁에 그걸 손댈 사람이 할머니 말고 누가 있어요?” “아제 말을 들어본께 인자부터는 그래야 쓰것네! 그란디 세금 안내고 있다고 이자 많이 물어내라고 그라문 으짜까?” “주민세가 3천 3백 원이니까 연체료는 백 원 정도 밖에 더 안 나와요! 그러니까 3천 4백 원 내시면 되거든요.” “그래~에! 나는 이자를 겁나게 많이 내라 그란지 알고 꺽정을 태산 같이 했네!”


 

저의 손등에 앉은 고추잠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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