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천 원짜린지 알았네!"

큰가방 2008. 10. 5. 07:58

“천 원짜린지 알았네!”


9월 말로 접어들면서 2~3일 동안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하늘에 온통 짙은 먹구름이 가득하더니 결국 비는 내릴 생각이 없었는지 구름이 모두 걷히고 오늘은 또 다시 맑고 파란하늘이 보이는 조금 무더운 가을 날씨로 변하자. 시골 들녘은 겨울 김장 때 사용할 쪽파 씨를 파종하기도 하고 잘 익어 누렇게 고개 숙인 벼를 콤바인을 이용하여 베어내기도 하며 막바지 가을걷이가 한창인데 하릴없는 고추잠자리들은 가을이 익어 감을 느껴보려는지 떼를 지어 푸른 하늘을 한가로이 비행하고 있으며


길가에 연분홍, 하얀, 붉은 코스모스는 오랜 가뭄 속에 목이 말랐는지 피어난 채 시들시들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금년에는 유난히 뜨거운 날씨가 오래 계속되면서 비가 내리지 않으니 코스모스뿐만 아니라 김장용 채소도 잘 자라지 못하고 있구나! 어서 빨리 많은 비가 내렸으면 좋으련만!”하는 생각을 하며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리 면소재지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면사무소 뒤쪽 골목길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비스듬히 돌아가고 있는데 골목 양지쪽에


할머니께서 김(海苔)에 맛있는 양념이 들어있는 풀을 발라 부각을 만들어 말리고 계셨다. “할머니! 오늘은 날씨가 좋아 부각이 잘 마르겠네요! 그런데 누구주려고 만들고 계세요?”하고 물었더니 빙긋이 웃으며“주기는 누구를 주것어? 우리도 묵고 손지들도 줄라고 그라제.” “손자들이 부각을 좋아하나요?” “추석에 손지들이 집에 왔는디 반찬이 있어야제! 그래서 먼자 맹글어논 부각을 지름에 튀겨 줬드니 맛있게 잘 묵데! 그래서 더 만들어 놨다가 아들 오문 쪼깐 싸주고 나도 묵고 그래야 쓰것구만!”


“그런데 아드님께서 돈을 보냈는데 어르신은 집에 계시나요?” “우리 영감? 다리가 아퍼 걸음발을 못한께 집에 있어야제 으디 돌아 댕기기나 하것어? 들어 가봐! 집에 있으껏이여!”해서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가 “어르신! 계세요?”하였더니 현관문이 열리면서“잉! 어서와! 우리 아들한데 돈 왔는가?”하고 물으셨다. “아드님이 용돈 보내셨나 봐요!” “아이고! 그것을 또 뭣하러 보냈으까? 즈그 살기도 복잡한디!”하며 딱한 표정을 지으신다.


“그래도 어르신 용돈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용돈아 무슨 필요가 있어? 내가 다리가 안 아퍼 돌아 댕기기나 하문 돈이 필요하제만 인자 다리가 아퍼 돌아댕길 수가 없는디 무슨 돈이 필요하것는가? 그리고 즈그들도 자식들 커나가고 있는디 가문 갈수록 돈이 더 많이 들제 작게 들것는가?” “그래도 마음이 있으니까 돈을 보내드리는 것이거든요.” “내가 그것 모르것는가? 그란디 자식들한테 약(藥)사 보내라. 용돈 보내라. 그래싼께 자꾸 미안해서 하는 말이시!”


“어르신 주민등록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리고 돈 한번 세보시고요!” “아이고! 안 세어 봐도 잘 맞것제! 오죽 잘해서 갖고 왔으껏인가? 그라고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고?”하며 주민증을 내 놓더니 “자네 조금 있다 우체국 가문 우리 집 전화세 좀 갖고 가소! 내가 걸음발을 잘하문 가까운께 내가 가서 바치문 된디 인자 걸음발을 잘못한께 미안해도 할 수없네!” “예! 그렇게 할게요!”하며 환증서에 주민번호를 적고 있는데 영감님께서 전화요금 고지서를 찾아 돈과 함께 내 놓으며


“전화세가 9천 5백 5십 원 이제? 그라문 여그 9천 원잉께 내가 5백 5십 원만 더 주문 된가?”하고 묻기에 “예! 그래요!”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어르신 여기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나요?”하고 물어 환증서에 전화번호를 적고 나서 전화요금을 보니 돈은 9만 5백 5십 원이 놓여있었다. “어르신!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주세요? 돈 만 원짜리 한 장만 있어도 남는데요!” “그래~에! 나는 그것이 만 원짜리가 아니고 천 원짜린지 알았네! 사람이 늙으면 이라고 정신이 없단 마시!”하시는 영감님께서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할머니 부각 만들어 누구주시게요?" "우리 손지들이 참 좋아해!"

 *억새와 함께 가을이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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