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이상한 장치

큰가방 2008. 11. 22. 10:11

이상한 장치


오늘도 행복이 가득담긴 우편물을 배달하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길을 달려가는데 엊그제까지 은빛머리 곱게 빗어 넘기고 가을바람에 한들한들 고개를 흔들며 지나가는 나에게“아저씨! 안녕하세요?”예쁘게 인사하던 억새는 어느새 머리가 온통 쥐어뜯긴 호호백발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를 보고 부끄러운 듯 자꾸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가을은 우리 곁을 떠나겠지? 그리고 차가운 겨울이 찾아오면 저 억새는 어떻게 변할까?”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며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은행(銀杏)마을 가운데쯤에 살고 계시는 영감님께 은행(銀行)에서 발송한 주유카드를 배달하려고 마당에 오토바이를 세우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더니“어서와! 오늘은 쪼금 늦었네!”하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예! 오늘은 원산마을 신영철 어르신이 보낸 청첩장을 배달하다보니 시간이 늦었네요!”하며 주유카드를 건네 드렸더니“그란디 이 카드는 내가 잊어불문 다른 사람이 은행에 가서 돈은 못 빼가는 카드제?” “주유카드로 현금거래는 할 수없어요.


그래도 카드니까 잘 보관하시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셔야지요.”하며 11월의 짧은 해 때문에 부지런히 다음다음 연동마을에서 할머니 한분을 만나 댁호(宅呼)를 써서 발송한 청첩장의 주인을 찾으려고“이 마을에 보성댁이 누구집인가요?”하고 물었더니 알 듯 말듯 미소를 짓던 할머니“보성떡은 쩌그 아랫마을에 있어!”하고 대답하셨다. “아랫마을 누구집인데요?” “누구 집은 누구집이여? 보성떡집이제!” “보성댁 이름이 누구인데요?” “이름은 몰라 그냥 보성떡이라고 부른께!”


“아직 이름도 모르고 계셨단 말씀이세요?” “와따~아! 촌사람들이 이름알고 그라간디 그냥 무슨 떡, 무슨 양반하문 다 알고 있는디!” “그래도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라지 말고 아랫동네 가서 물어봐! 길 밑으로 한집 있는 것이 보성떡 집잉께!”하는 순간 휴대폰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 “잉! 나여! 그란디 뭣을 잔 물어볼라고 전화했네!” “누구신데요?” “아! 나란말이시 잘 모르것는가?”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 금방 자네가 우리 집에 카드 갖다 주고 갔제? 여그 은행(銀杏)이랑께!” “그럼 은행마을 김경호 어르신이세요?” “잉! 그래! 그란디 뭣을 잔 물어볼라고 전화했네!” “무엇이 궁금하신데요?” “다름이 아니고 금방 자네가 갖다 준 카드 안 있어? 그 카드번호가 뭣이단가?” “카드번호요? 번호는 카드 가운데나 아니면 뒷면에 적혀있는데 왜 그러세요?” “여그 안내서를 본께‘카드번호를 등록하고 사용하라!’고 그란디 카드번호가 뭣인지를 몰르것단 말이시!”하며 간절하게 말씀하셨다.


“어르신! 그러면 제가 지금 연동마을에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가더라도 5분정도 걸리거든요! 아시겠지요?” “5분이사 지달리제 내가 10분은 못 지달리고 있것는가?”하여 전화를 끊고 김경호 영감님 댁으로 급히 달려갔더니 “바쁜디 오라 그래서 미안하시! 그란디 이것이 만날 등록이 안 된단 마시!”하며 카드와 전화를 나에게 내미셨다. 그래서 카드 안내서에 적혀진 전화번호를 누르고 “귀하의 카드번호를 등록해주십시오!”하는 안내에 따라 번호를 누르는데 미처


다 누르기도 전에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눌러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번호는 아직 다 누르지도 않았는데!”하며 다시 시도를 하였으나 등록이 되지 않았다. “거 보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제?”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영감님, 그래서 상담원을 연결하여 카드번호를 등록하였는데 “그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들이여! 카드번호를 등록하라고 그라문 노인들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디 이상한 장치(자동응답 장치)를 해 논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알 수가 있는가?”

 

 

 

*떠나가는 가을은 우리에게 쓸쓸함을 남겨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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