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비 맞아도 괜찮은 소포?

큰가방 2008. 12. 7. 10:06

비 맞아도 괜찮은 소포?


“여보세요! 김영님 할머니 휴대폰인가요?” “그란디 누구여?” “안녕하세요? 여기 우체국입니다.” “이~잉! 편지아제구만! 그란디 으째 전화했어?” “할머니께 택배가 하나 도착했네요.” “그라문 얼렁 갖고 오제 뭣 할라고 전화했어?” “지금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후 1시쯤 할머니 댁으로 배달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때쯤 어디 나가지 마시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시겠지요?” “잉! 알았어! 얼렁 갖고 와! 잉!” “예!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배달해 드릴게요!”하고 전화를 마친 후


오늘 배달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지금까지 맑은 햇살이 가득하던 하늘에 어디선가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사방이 어두컴컴해지면서 강한 바람까지 불어오고 있었다. “12월이 가까워지니 날씨가 추워지려는 모양이구나! 이제부터 겨울이 시작되겠지?”하며 바라본 시골 들판의 쪽파 밭에서는 오늘도 많은 아낙네들이 모여 쪽파 수확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1시가 거의 가까워지면서  김영님 할머니 댁에 도착했는데 대문에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오늘은 집에서 기다리신다고 했는데 어디 가셨을까? 혹시 마을 회관에 놀러가셨을까?”하며 회관으로 가 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할머니들이 모두 쪽파 밭에 작업하러 나가셨나 보다!”하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저 집배원인데요. 방금 할머니 댁 앞에 왔는데 대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네요. 지금 어디계세요?” “나~아? 지금 밭에서 파 작업하고 있어!”


“오늘은 집에서 저를 기다리신다고 해 놓고 파 작업을 나가시면 어떻게 해요?” “집에 카만히 앙거 있으문 뭣해! 일 있을 때 부지런히 한 푼이라도 벌어야제! 그라고 집에 있을랑께 여기저기 아프고 심심해서 못 있것데 그래서 밭으로 나와 부렇어!” “그러면 택배는 어떻게 할까요?” “오~오! 참! 택배 있다고 그랬제! 내가 깜박 잊어부렇네! 그라문 옆집 아무한테나 매껴놓고 가!” “할머니도 참! 옆집에 누가 있겠어요? 모두 쪽파 밭에 나가셨지! 요즘 집에서 노는 사람이 있겠어요?”


“그라고 본께 참말로 그라네! 잉! 그라문 대문 안으로 땡겨놓고 가!” “대문 안으로 던져놓으라고요? 그러다 물건이 깨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깨질 것은 업응께 꺽정도 말고 그냥 땡겨부러!” “그런데 택배가 깨질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가벼워서 바람이 강하게 부는데 이리저리 굴러다니면 어떻게 하지요?” “별 꺽정을 다 해쌓네! 지가 굴러가드라도 마당 으디가 있것제 으디로 갈 것이여? 그랑께 꺽정말고 그냥 던져놓고 가! 알았제?”하며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그래서 라면 박스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아주 가벼운 택배 하나를 조심스럽게 대문 너머로 내려놓고 다음 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하늘의 짙은 먹구름 때문에 주위는 더욱 어두워지면서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오기 시작하여 서둘러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마당으로 넘겨놓은 김영님 할머니 택배가 생각나 급히 할머니께 전화를 하였다. “할머니! 여기 우체국인데요. 집에 들어가셨어요?” “아니 아직 일이 안 끝났어!”


“지금 밖이 캄캄하고 비까지 내리는데 아직도 작업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이세요?” “일 어중간해서 마져 끝내 불라고!” “그러면 택배는 어떻게 하셨어요?” “택배? 그냥 마당에 있것제!” “지금 비가 오고 있는데 택배 비 맞아도 괜찮겠어요?” “그것 비 맞어도 괜찬한께 꺽정 말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데요?” “내가 지난번에 우리 딸집 갔다 속옷하고 뭣을 놔두고 왔는디 그것 보낸 것인디 비니루로 잘 싸갖고 보냈다 그라드만 또 젖었으문 한번 빨면 된께 꺽정말어 그라고 전화해줘서 고마워 잉!”


*우리 막내 딸이 보낸 소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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