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우추고 찾았어?"

큰가방 2008. 12. 27. 17:55

“우추고 찾았어?”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가는 길, 지난 늦가을부터 옷을 모두 벗어버린 도로의 가로수들은 지나가는 바람에 추위를 느꼈는지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바람결에 실려 온 둘둘 말린 낙엽 한 장이 빙그르르 땅바닥을 구르고 굴러 높이 솟아오르더니 어디론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있는 듯 보이는데 도로 옆 쪽파 밭에서는 12월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아낙네들이 모여 쪽파를 뽑아내기도 하고 또 커다란 트럭에 옮겨 싣기도 하면서 겨울철 짧은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내가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두곡마을 입구에 들어서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3시를 가르치고 있어 “오늘도 해가 지기 전 우편물 배달을 끝내려면 서둘러야 하겠는 걸!”하며 마을 회관 앞을 지나고 있을 때 따뜻한 양지쪽에 모여 햇볕을 즐기고 계시던 영감님 몇 분이 손을 흔들며 “어이! 고상해쌓네!”하셨는데 그중 한 분이 “어이! 자네! 이리 좀 와보소!”하고 부르셔서 “무슨 일이신데요? 부탁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하며


오토바이를 세웠더니 빙긋이 웃으며 “아니 쪼끔 쉬어가라고!”하자 옆에 계신 영감님께서 “부탁할 일 없으문 바쁜 사람을 뭣하러 불러!” “자네도 참! 속아지가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하며 나를 부른 영감님을 나무라자 “그란디 내가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네!”하신다. “무엇을 물어보시게요?” “다른 것이 아니고 엊그저께 자네가 우리 집으로 갖다 준 편지 안 있는가? 그것을 본께 아무리 봐도 내 이름이 안 써졌드만 우추고 찾았어?”


“엊그제 편지라면 독일에서 따님이 보낸 편지 말씀이세요?” “그것이 영어로 써 있든디 보낸 사람 주소하고 이름은 있어도 받는 사람은 주소만 있고 이름이 없어! 그런 것 보문 자네들 참말로 기술이 좋데!” “그것은 간단해요! 받는 사람 주소가 있고 이름이 없어도 보낸 사람 이름이 있으니 보낸 사람 이름을 보면 누구네 집 편지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거든요. 또 이 마을에 독일에 나가 있는 사람은 어르신 댁 따님 말고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에! 자네 말을 들어본께 간단한디


나는 암만 생각해도 신기하드란 말이시!”하시자 옆에 계신 영감님께서 “와따~아! 편지 배달하는 사람들이 영어(英語)를 모르것는가? 한문(漢文)을 모르것는가? 그냥 척하문 삼천리것제! 안 그런가?”하시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그라것제~에!”하셨는데“그라문 일본에서 보낸 편지도 읽을지 안가?”하고 또 물으셨다. “일본에서 보낸 편지는 거의 한문 아니면 영문으로 써 있기 때문에 수취인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어요!” “그래~에! 그라문 자네들은 모르는 글자가 없것네?”


“왜? 우리라고 모르는 글자가 없겠어요? 아는 글자보다 모르는 글자가 훨씬 더 많지요!” “아니 영문(英文)하고 한문(漢文) 알문 되제 뭣이 또 필요해?”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다문화(多文化)가정이 많지 않습니까?” “다문화 가정이라문 외국에서 시집온 여자들 말이여?” “예! 그쪽에서 우편물이 오는데 영문이나 한문이 아니고 자기네 나라 글자로 우편물이 오니까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거든요.” “그라문 쩌기 서동마을 누구네 집 같이 필리핀에서 편지가 오문 힘 들것네!”


“필리핀은 영어 문화권이기 때문에 괜찮은데 방글라데시 또는 태국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 우편물이 오면 곤란을 겪을 때가 있어요.” “그라문 그 편지는 우추고 한가? 그냥 다시 그 나라로 보내 버리는가?” “어떻게 귀중한 우편물을 반송할 수가 있답니까? 찾아서 배달해야지요!” “글자를 모르면서 우추고 찾어?” “우선 사무실 직원들에게 물어보고 아는 직원이 없으면 그 나라에서 시집온 부인들에게 가져가서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하였더니 무릎을‘탁!’치신 영감님들“아~하! 그런 방법이 또 있었구만! 잉!”


 

*할머니! 쪽파는 다듬어 뭐하시게요?" "쪽파~아! 우리 딸 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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