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어부들의 농한기

큰가방 2012. 12. 15. 17:40

 

어부들의 농한기

 

전남 보성 회천면 청포마을 맨 윗집에 2013년도 사용할 기다란 달력 하나를 배달하려고 높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오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와 함께 ‘퉁! 퉁!’마치 망치로 무엇인가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건너 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하며 살며시 울타리 위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옆집 할머니께서 서리에 잎이 다 시들어버린

고추 밭에서 고추를 따고 밭 옆 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서는 영감님께서 톱으로 잘게 잘라놓은 나무를 조그만 손 도끼로 쪼개고 계셨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나무를 그렇게 쪼개고 계세요?” 하고 묻자 고개를 돌린 영감님 “어~이! 자네 오셨는가? 그라고 본께 자네 얼굴 본지가 참말로 오랜 된 것 같네!”

“저야 이 마을에 자주 오지만 어르신 얼굴 보기가 더 힘든 것 같던데요.” “그랬어?”하는 순간 어느새 가까이 다가오신 할머니

 

“우메! 오랜만에 아제를 만나네!”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기신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 동안 잘 계셨지요? 그런데 지금 무슨 나무를 쪼개고 계세요?” “이것 말이여? 이것은 구지뽕나무여!”

“구지뽕나무라고요?” “자네 구지뽕나무가 뭣인지 안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람에게 아주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비싸다고 하데요.”

 

“그래~에! 그란디 이것이 여자들한테 아조 존 나문디 암에 좋다고 소문이 났다 그라데!” “암을 치료한다고 해서 그렇게 비싸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걸 어디서 구해오셨어요?”

“이거엇? 내가 산에서 비여 갖고 왔제 으디서 낫것는가?”

“요즘에는 바다에 고기 잡으러 안 나가시고요?” “아이고! 겨울에는 바다에 못나가!” “왜요?” “자네도 생각해보소! 이라고 찬바람이 불어 싼디 으디 가서 괴기를 잡으꺼인가? 그랑께 못 나가제!” “그러면 요즘이 어르신 농한기(農閑期)인 셈이네요.”

 

“말하자문 그라제!” “그런데 어르신이 필요해서 산에서 구지뽕나무를 베어오신 거예요?” “이것하고 다른 약초하고 골고로 석어갖고 솥단지에 너갖고 끌여서 보리차 묵데끼 한 그럭씩 마시문 좋다 그라데 또 우리 애기들도 필요하다고 쬐깐 비어다 노라고 해서 비여 갖고 왔어!”

 

“그것을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걸까요?” “즈그 처갓집이서 필요하다든가 으짠다든가 하여튼 그래서 비여 갖고 왔어!” “그러면 산에 나무는 많아요?”

“나무가 있으문 을마나 있단가? 그랑께 나만 알고 있어! 으째 자네도 필요해서 그란가?” “아니요! 저는 필요 없어요!”

 

“아니 그라지 말고 필요하문 말해! 내가 갈쳐 주께!” “정말 필요 없다니까요?”하시자 옆에 계신 할머니

“그라지 말고 필요하문 은제 한번 일요일 날 와! 내가 나무 있는데 갈쳐 주께!” “그러면 나무는 베어내면 또 자라날까요?” “비여 내는 것은 괜찬한디 으뜬 사람들은 뿌랭이까지 파가 분다고 그라드만!”

 

“정말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그랑께 말이시! 아무리 나무가 필요해도 그런 짓거리는 안해야 되는 것 인디 참! 사람들이 못 쓰것드만!”

“그래서 무엇이든 사람 몸에 좋다고만 하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하잖습니까?” “그렁께 말이시!” “그러면 나무는 또 베어 오실 거예요?”

 

“아이고! 나 필요한 정도만 비여 갖고 와야제! 또 비문 쓰것는가? 그라고 인자 여그 비여 갖고 온 나무 뿌랭이에서는 내년에 또 새 순이 나꺼이시!”

 

언제부턴가 사람의 몸에 좋다고만 하면 나무는 물론 뿌리까지 파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하면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은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본다.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 "꼬치가 다 시들어 부러서 따부니라고!"

 

 

 

 

 

42083

 

 

 

 

 

 

 

 

'따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  (0) 2012.12.22
진짜 생일 가짜 생일,  (0) 2012.12.08
야생 동물의 먹이  (0) 2012.12.01
딸 친구의 선물  (0) 2012.11.25
휴대폰 주인을 찾습니다.  (0) 201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