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내가 우리 동네 마담이여!"

큰가방 2015. 12. 13. 11:07

내가 우리 동네 마담이여!"

 

10월의 중순으로 접어들자 그렇게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골 들녘의 쪽파 씨 파종 작업도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벼를 모두 베어낸 텅 빈 논에서 먹이를 찾던 수십 마리 참새 떼들이 빨간 오토바이 소리에 놀랐는지 갑자기

 

우르르떼를 지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전남 보성 회천면 농소마을 첫 집에 택배로 도착한

배 박스 하나를 배달하려고 대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 !’소리를 냈더니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신 할머니께서 활짝 웃는 얼굴로

 

아제! 어서 오씨요!”하며 반기신다. “안녕하세요?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어요?” “나는 잘 쇠었제! 그란디 아제도 편하게 잘 쇳어?

식구들이랑 다 모이고?” “할머니 덕분에 잘 지냈어요. 그런데 추석은 이미 지나갔는데 웬 배 박스가 올까요? 오려면 명절 전에 와야 하는데요.”

 

~! 이거~! 내가 추석을 서울 우리 큰아들 집이서 쇠고 왔어! 그란디 아들집으로 뭔 선물이 마니도 들어오데!

그란디 홍삼이 선물로 왔다고 나보고 갖고 가라고 그란디 무구와서 갖고 올수가 있어야제! 그래서 아야! 안되것다. 난중에 택배로 부쳐라!’

 

그랬드니 인자 부쳤는 갑구만.” “그런데 홍삼이 이렇게 무거울까요?” “아이고! 홍삼만 들었것서 배도 몇 개 너갖고 보낸다고 그라드만.”

그럼 그렇지! 홍삼만 들었다면 이렇게 무거울 리가 없지요.”하고 박스를 마루에 놓고 막 돌아서려는데 아제! 그냥 가불라고?”

 

가려면 그냥 가야지 크게 소리 지르고 가야하나요?” “아니~! 내말은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야제! 그냥 가문 써운한께 그라제~!

얼렁 물레에 잔 앙거있어! 내가 금방 커피 끼리께!”하더니 물을 넣은 전기포트를 가지고 나오시며이래뵈도 내가 이 동네 다방 마담이여!

 

커피를 을마나 잘 끼린다고!”하며 1회용 커피를 가지고 나오신다. “그러면 다방 하셔서 돈 많이 버셨겠네요.”

돈을 벌문 을마나 벌었것서 그냥 질갓집이 되야갖고 동네 사람들 왔다갔다 함시로 커피 타주라고 하문 한 잔썩 타주고 그라제!”하더니

 

! 저것을 끌러봐야제!”하고 택배의 포장을 풀기 시작하더니 아제! 이것이 6년 근 홍삼이라고 그란께 한 개 자셔봐!”하며 팩을 하나 꺼내 주신다.

이것은 할머니 드시라고 아드님이 보낸 것인데 제가 먹으면 되겠어요?” “아이고! 묵을 것은 나눠묵어야 쓴것이여!”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것은 제가 먹으면 안 되니까 냉장고에 잘 보관하시고 한 개씩 드세요.” “그라문 그라까? 그란디 아제 줄 것이 읍는디

써운해서 으짜까?” “저는 커피 한잔 마시면 되잖아요.” “! 내 정신 좀 봐라! 커피 끼래준다고 해놓고 따른 일만 하고 있네!”하더니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내놓고는 홍삼 액이 들어있는 팩을 가르치더니 이것 한 개만 자시문 좋것는디 으째 안 묵은다고 그래싸?”

아드님이 할머니 생각하고 보낸 것인데 이 사람 저 사람 나눠먹으면 안 되는 법이에요.” “그래 잉! 그라문 으짜까?”하더니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얼른 일어나 담장위에 서있는 감나무 밑으로 가더니 아제를 그냥 보낼란께 암만 생각해도 안 되것네!

감이라도 몇 개 따 주꺼잉께 맛이 읍드라도 갖고 가서 자셔~!”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무엇이든 나누려고 하는

우리 어머니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애기들이 또 멋을 이라고 보냈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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