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장과 요즘 이장
전남 보성 회천면 장목마을 맨 윗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영감님께서 마루에 앉아 방금 삶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구마를 잡수고 계시다
나를 보고 “어야! 마침 잘 왔네! 이루와서 이것 잔 자시고 가소!”하며 반기신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출출하던 참인데 마침 잘 되었네요.”하고
마루에 걸터앉으면서 “오늘은 청첩장 한 장하고 환경세 고지서가 있네요.”하고 건네 드리자 “환경세라고? 그것은 또 뭣이여?”
“경유차 소유하고 있는 분에게 부과하는 환경세(環境稅)있잖습니까?” “벌써 그것 낼 때가 되었으까? 참! 세월도 빠르네!”
“그러게요. 엊그제 새해가 밝았다고 한 것 같은데 벌써 11월 하순이 가까워지니 왜 그런지 세월이 정말 빠른 것 같네요.” 하며
조그맣고 빨간 고구마 하나를 집어 껍질을 벗기는데 “엊그저께 저녁에 태래비를 본께 편지가 거의 다 사라졌다고 그라든디 그라문
요새 집배원들은 뭣을 배달한단가?”하고 물으신다. “옛날에는 전화가 별로 보급되지 않아 안부를 전하려면 편지 밖에
소통의 수단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통신의 발달되면서 요즘은 집 전화는 물론이고
휴대폰도 식구대로 다 한 개씩은 가지고 있는 시대니 누가 편지를 쓰겠어요? 그러니 손으로 쓴 편지는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편지가 사라졌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나 집배원들은 편지만 배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라문 편지 말고 또 뭣을 배달한단가?”
“옛날에는 결혼을 하거나 초상이 났을 때는 다 사람을 사서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돌리곤 했거든요.” “잉! 그때는 그랬제!”
“그런데 요즘은 모든 것을 우편으로 보내니 편지는 사라졌다고 해도 집배원들이 배달할 우편물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자네 말을 들어본께 참말로 그라네!” “그리고 옛날에는 재산세나 주민세 같은 공과금은 모두 마을 이장(里長)이나 반장들이 배달하고
또 받아가기도 했는데 그런 공과금도 지금은 모두 우편으로 발송되니 옛날에는 집배원들이 집을 찾아오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고
신발도 안 신고 달려 나가곤 했다는데 요즘에는 저희들을 만나면 무슨 고지서를 가져오는가 하고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자네 말이 맞네! 맞어! 허! 허! 헛!”하시더니 “나도 옛날에 우리 동네 이장을 십 몇 년을 했어! 그래갖고 재산세 같은 것 안 있는가?
그것을 반장들한테 돌리라고 마니 했제! 그란디 또 그것을 받아갖고 오라 그란단 말이시!” “그러면 돈을 잘못 받으면 많이 변상하기도 했다는데
정말 그러셨나요?” “으째 그런 일이 읍다고 하것는가? 그때는 그런 일은 다 보통으로 생각할 때고 또 지금 같이 차가 있는 것도 아닌께
자징게를 타고 댕김시로 돈을 받으로 댕겼는디 나중에는 술에 취해갖고 우추고 집으로 온지도 모를 때가 있었어!”
“그럼 돈을 받아 술을 드셨나요?” “돈 받어 갖고 술 묵어 불문 쓰간디! 집 집마다 돈 받으로 가문 고상해싼다고 여기서도 한잔!
저기서도 한잔! 줘 싼디 안 묵을 수도 읍응께 준대로 받어 묵다 보문 술에 취해부러!” “그렇게 보면 세상이 참 많이 변했지요?”
“그렁께 말이시! 편지가 사라져서 집배원들이 편한지 알았드니 그것도 아닌 갑구만 그란디 세금도 안 돌리고 안 받으로 댕기문 요새 이장들은 뭣을 한가 모르것네!”
"날씨가 상당히 추운데 무엇하고 계세요?" "이~잉! 메주 콩 잔 쌈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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