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크리스마스 선물

큰가방 2015. 12. 27. 17:26

크리스마스 선물

 

아침 식사를 끝내고 출근하려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이니 쉬는 날이지!”하며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1977년 내가 처음 전남 신안 안좌우체국에 집배원 발령을 받아 1년쯤 근무하였을까? 그때는 연말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가 매일 산더미처럼 퍼부었기 때문에, 공휴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근무를 하던 때였다.

그리고 각 가정에 전화도 보급되지 않던 시절이어서 모든 소식은 편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던 때였는데, 그날이 크리스마스 날인데

 

왜 그렇게 바닷바람은 강하게 불어오는지,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편물을 배달하다보니 어느덧 해는 서산에 걸려있어,

조급한 마음에 더욱 부지런히 서둘렀는데, 신안군 팔금면 읍리의 온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교회에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자전거를 세워놓고 열심히 계단을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는데 나지막이 저기요! 저기요!”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예쁜 아가씨가 교회 뒷골목에서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왜 그러세요?”대답하자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여 영문도 모른 채 천천히 다가서자. 갑자기이것!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하며

 

종이봉지 하나를 손에 쥐어주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쏜살 같이 골목길로 뛰어 들어갔다. “이것이 무엇이기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거야?”하며

봉지 속이 무척 궁금했으나, 아가씨가 어디서 숨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차마 그 자리에서 열어보지 못하고 표면을 손으로 만져 보았는데,

 

한쪽은 아직 뜨뜻하면서도 동글동글한 것이 들어있고, 한쪽은 매우 차가우면서 물컹거리는 것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바스락 소리가 나는 뻣뻣한 수첩 같은 것도 들어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줄 몰라 뭐가 들었기에 이렇게 딱딱하고 물컹거리지?”하며

 

건네준 종이봉지를 빨간 자전거 뒷좌석에 고무줄로 단단히 묶은 다음, 얼마 남지 않은 우편물을 배달하러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를 털털거리며

 

마지막 마을 입구로 들어서려는 순간!”소리가 들려 뒤 돌아보았더니 뒤에 실려 있던 종이봉지가 찢어지면서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땅바닥으로 쏟아져버렸다. 그래서 얼른 자전거를 세우고 살펴보니 처음 만졌을 때 둥글둥글하면서

 

따뜻하다고 느낀 것은 삶은 계란이었고, 물컹하다고 느낀 것은 빨갛게 잘 익은 홍시였으며, 바스락 소리가 난 것은

예쁜 종이에 싼 양말 두 켤레였는데, 봉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몰라, 자꾸 만지작거리다 자전거 뒷좌석에 고무줄로 꽁꽁 묶은 다음,

 

포장도 되지 않은 시골길을 털털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니, 결국 홍시가 깨지는 바람에 삶은 계란과 양말이 홍시와 뒤범벅 되면서

종이봉지가 터지고 만 것이었다. ! 그때의 난감함이란! 지금은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비닐봉지조차도 귀했던 그 시절,

 

밀가루 포대를 잘라 봉지로 사용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고향으로 발령을 받아오는

 

바람에 어쩌면 좋은 인연으로 남았을 그 아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오고 말았다.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은 그때 그 아가씨가 늘 건강하고 날마다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나도 집배원을 해야겠는데 이걸 어떻게 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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