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파리 꼬이던 날

큰가방 2016. 8. 7. 15:41


파리 꼬이던 날

 

전남 보성읍 삼산 마을 중간쯤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택배를 배달하려고 적재함에서 아이스박스 하나를 꺼내

마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께서우메! 소포가 얼렁도 와부렇네! 어지께 보낸다고 전화 왔드만!”하며 반기신다. “반찬이 도착했나 봐요!

 

누가 보낸다고 하던가요?” “우리 짝은 아들이 엄니 반찬 읍다고 보낸다고 글드랑께! 애기들이 즈그나 묵으꺼이제만 뭣 할라고

자꼬 이른 것을 보내싼가 몰것어!” “그런데 소포가 냉장식품이라고 적혀있거든요. 빨리 풀어 냉장고에 넣으셔야 되겠네요!”

 

그래~! 그라문 얼렁 풀어 봐야쓰것구만!” 하고 박스의 테이프를 뜯어내자 그 속에는 뜨거운 여름 날씨인데도 자반고등어가

먹음직스럽고 예쁘게 한 마리씩 진공포장 되어 하나도 상하지 않고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다음 마을을 향하여

 

오토바이와 함께 천천히 달려가는데 문득 30여 전 일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오토바이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고

빨간 자전거 핸들에 큰 가방을 걸고 소포는 자전거 뒤 짐 싣는 곳에 고무줄로 묶은 다음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배달할 때였다.

 

그리고 그날도 요즘처럼 굉장히 무더운 날씨로 기억이 되는데 소포를 포장할 종이조차 귀했던 그 시절, 밀가루 포대를 잘라 대충 포장한

강원도 어느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발송한 소포 하나가 도착되었다. 그래서 빨간 자전거 뒤에 고무줄로 꽁꽁 묶은 다음 우체국을 출발하였고,

 

첫 번째 마을을 지나고, 두 번째 마을 어느 집 대문 앞에 잠시 자전거를 세워놓고 등기 하나를 배달하고 나올 때만 해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데,

계단이 있는 상당히 높은 집에 편지 배달을 하고 내려오는데 자전거 뒤에 실려 있는 소포에 시커먼 게 잔뜩 붙어 있어,

 

이상하다! 저게 무얼까?” 하고 가까이 가는 순간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시커멓게 붙어있는 것은 다름 아닌 파리 떼였기 때문이다.

아니! 웬 파리가 이렇게 많이 붙어있지?” 하고 손으로 ! !’쫓은 뒤 다음 마을로 향하였는데 이상하게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 이상한 일이다! 왜 파리들이 나를 따라오지?’ 하고 다음 마을에서 또 잠시 자전거를 세워놓고서는 편지를 배달하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커다랗고 시커먼 쉬파리 떼가 소포를 에워싸고 마치 벌 떼처럼 윙 윙!’거리고 있어 냄새를 맡아보니

 

내용물이 생선이었는데, 지금처럼 비닐로 포장하여 아이스박스에 넣은 것이 아니고 밀가루 포대를 잘라 대충 포장한 관계도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우편물 운송하는 시간이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 오려면 최소 4일에서 5일씩 걸렸었고 또 냉장고도 귀하였던 시절이라

뜨거운 날씨에 생선이 조금씩 상해 가면서 썩은 냄새를 풍기자 파리들이 냄새를 맡고 주위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파리를 쫓으며 배달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마을에 잠시 자전거를 세워놓기만 하면 어디서 날아오는지 엄청난 파리들이

소포 주위로 몰려드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이아니! 자네는 포리도 배달하고 댕긴가? 먼 포리들이 그라고 자징게 옆으로 달라든당가?” 하는

 

바람에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였는데, 정작 소포를 받으신 영감님께서는 나는 괴기가 다 썩어 불고 안 올지 알았는디 한나도

안 썩고 썽썽해(싱싱해) 갖고 왔구만! 여그까지 갖고 오니라 고생했네 잉!” 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파리들도 많았는지. 그리고 파리가 몰려들 정도의 생선을 받으신 영감님께서는 그 생선을 어떻게 하셨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오늘은 고동(다슬기)이 별라도 마니 있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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