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그때는 그랬어!"

큰가방 2016. 8. 21. 15:04

그때는 그랬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듯 강열한 폭염(暴炎)을 쏟아 붓는 하늘의 태양 때문에 시작된 무더위와의 싸움은

벌써 보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지만 푸르름이 가득한 시골 들녘에는 하얀 옷을 입은 백로(白鷺) 한 쌍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이 논에서 저 논으로 먹이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보성읍 방축마을 가운데 집에 조그만 택배 하나를 배달하려고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두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저 왔어요! 어디계세요?”하고 큰 소리로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이상하다! 왜 대답이 없으시지? 혹시 밖에 나가셨나?”하고 다시 한 번 할머니! 어디계세요?”하였으나 여전히 대답이 없어

오늘은 날씨가 무더우니 에어컨이 있는 회관에 가셨나 보다 그러면 이 택배는 그냥 안에다 놓고 가야겠다.”하고 현관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택배를 놓아두고 막 나오려는데 누구여? 누가 와써?”하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에요! 그런데 어디 다녀오세요?”

~! 우채구 아자씨가 왔구만! 그란디 뭔 일이여?” “약이 왔나 봐요. 그런데 안 계셔서 안에다 넣어두고 나오느라고요.”

 

그랬어? 아이고~! 참말로 착실하기도 하네! 나는 아까 내가 문을 닫어노코 나가쓰껏인디 으째 문이 열려져있어서

이상하다! 내가 이라고 정신이 읍는가?’그랬단께!” “그러셨어요? 그런데 어디 다녀오셨어요?” “우리 집 쌀에 바개미가 일어쌓네!

 

그래서 요 아랫집 가서 챙이 잔 얻어갖고 오니라고!”하며 이제는 많이 낡아 보이는 키를 손에 들고 계신다. “그러면 키질하시게요?”

쌀에 바개미가 만한께 챙이로 잔 까불어부러야제! 그것으로 우추고 밥이나 해 묵것서?” “바구미 먹은 쌀이 많은가요?”

 

아니! 을마 안 되야! 그랑께 쟁이로 까분다고 그라제 많기나 하문 늙은이가 그것을 우추고 다 까부것이여? 안 그래?”하며

절반쯤 들어있는 쌀 포대를 안에서 꺼내 오시더니 바가지로 쌀을 떠내 키에 붓고 까불기 시작하신다. “키질은 언제부터 하기 시작하셨어요?”

 

몰라! 내가 시집도 오기 전에 그랑께 애기 때부터 했응께 은제부터 했는지 인자는 기억도 잘 안 나네!” “그러면 그것은 누구에게 배우신거예요?”

다 친정 엄니한태 배우든가 안 그라문 친정 할머니한태 배우든가 그랬제! 안 그래? 그 시절만 해도 이른 것을 할지 모르문 시집을 못 갈지 알았어!

 

그랑께 애기 때부터 글은 안 배와도 이런 것은 배우고 그랬제!” “그러면 따님이나 며느님은 키질 할 줄 아시나요?”

요새 절문 사람들이 은제 이른 것을 해 봐쓰것이여? 그라고 요새는 쌀도 마트가문 째깐씩 들어있는 것 있드만 그것 폴아다 묵으문 되제 멋할라고

 

멍충하게 가마니 쌀 풀아다 노코 묵간디! 안 그래!” “그러면 이제 할머니 돌아가시면 키질하실 분도 안 계시겠네요?”

그라고 되것제! 그래도 이른 것은 안 배와도 요새는 잘 묵고 잘 산께 괜찬해! 지금 생각해 봐도 으째 그라고 옛날에는 못 살았든고!

 

새벽이문 일찌거니 일어나서 도구통에 방에 찌어 갖고 밥하고 그랬어도잘했네! 못했네!’시엄니 한태 구박 받고!”하시며

어느새 눈시울이 빨개지신다. “그러면 그때는 정말 힘드셨겠네요?” “그란디 그때는 나만 그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다 그랬어!

 

그랑께 다 이겨내고 살었제~! 그라고 인자는 내가 시엄씨가 되고 친정 엄니가 되고!”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고단했던 옛날의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 있었다.


축 광복절 71주년 기념





42442


 


'빨간 우체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간 자전거의 추억  (0) 2016.10.09
파리 꼬이던 날  (0) 2016.08.07
크리스마스 선물  (0) 2015.12.27
옛날 이장과 요즘 이장  (0) 2015.12.20
"내가 우리 동네 마담이여!"  (0)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