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빨간 자전거의 추억

큰가방 2016. 10. 9. 11:15

빨간 자전거의 추억

 

197712월 전남 목포우체국에서 내가 처음 집배원 발령을 받아 전남 신안 안좌우체국에서 근무하던 때, 그 시절에는 동그란 모자를 쓰고

오토바이 대신 빨간 자전거 핸들에 큰 가방을 걸고 우편물을 배달하던 때였는데, 아마도 모를 심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앙기나 트랙터는 보급이 되지 않았을 때여서 모든 농사를 사람의 손으로 해 내던 시절이었다.

천개의 섬으로 이루어 졌다는 전남 신안군 안좌면의 지금은 생각나지 않은 어느 조그만 농촌마을 우편물 배달을 끝냈다.

 

그리고 평소에 그 영감님의 며느리가 나와 같은 고향이라며, 사돈이라고 부르는 집 마당으로 일간신문을 가지고 들어서자

어이! 사둔 오셨는가?” 하며 반기시더니 시장하신디 이루 와서 막걸리 한잔하고 가게!”하시는데, 그때는 초여름 날씨인지라,

 

덥기도 하고, 목도 마르고, 또 배도 고프기도 해서, 영감님께서 권하는 커다란 대접에 담긴 막걸리 한잔을 사양도 않고,

그냥 벌컥벌컥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다음 마을을 향하여 커다란 고개를 넘어가는데. 그 고개는 평소에도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굉장히 가파른 고개였기 때문에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없어, 어깨에 걸쳐 메고 오르기 시작하는데,

그날따라 고갯길은 올라가도 또 올라가도 끝이 없었다. 그리고 고갯길을 오르다보니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면서, 정신까지 몽롱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적당히 앉아서 쉬어 갈만한 나무 그늘도 없는데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 빛은 사정없이 나를 향해 퍼붓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 어찌해서 힘들게, 간신히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을 때는,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고갯마루에 커다란 아름드리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는데,

소나무 그늘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더니, 몇 척이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수많은 돛단배들이 대형선단을 이루어,

흑산도 쪽으로 소리 없이 천천히 미끄러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있고 아름답구나!”

 

생각하고 잠시 바라보다, 그대로 쓰러져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잠 들었을 때의 소나무 그늘은 어느새 옆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린 것은

 

빨간 자전거와 핸들에 걸려있던 큰 가방뿐이었다. 나중에 알았던 일인데 집에서 막걸리를 담그면 처음 원액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 그 원액에 몇 배의 물을 섞어 희석을 시켜 마셔야하는데, 그때 어르신께서는 바쁜 사람 기다리게 하기 미안하여,

 

물을 타지도 않은 원액을 그냥 권하셨고, 그것을 한사발이나 마셔버린 나는 그만 술에 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 지

벌써 40여년이 가까운 오랜 세월이 지났고, ‘반가운 사돈이 왔다!’며 막걸리 원액을 권해주셨던 그때의 영감님은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 계신다면 백 살은 훨씬 넘으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때 막걸리 원액을 마시고 고생을 하였던,

나는 지금도 시골마을 가정집에서 담았다며, 권하는 맛있는 막걸리는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빨간 자전거를 타고 편지 배달을 하던

 

그 시절에는 음주운전이니, 과속이니, 난폭 운전이니 하는 말은 들어볼 수도 없었고, 마을 주민들과 오고가며 권해주는 막걸리 한잔에,

정을 주고받고 하였는데, 이제는 시골마을의 주민들께서 술을 권하면 어떻게 하면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까?” 하고

 

꽁무니를 뺄 궁리부터 해야 하니 그래도 그 시절 빨간 자전거가 정말 그립다.


가을이 찾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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