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처갓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나자 둘째 처남이 “매형 한잔하시죠!”하며 차(茶)를 내 놓았다. “이게 무슨 차냐?” “커피요.”
“나는 요즘 커피는 잘 마시지 않는데.” “그럼 녹차(綠茶) 드릴까요?”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집에 있는 사람이
괜스레 차를 마신다며 커피나 녹차 같은 걸 구입해 마시다보면 그것도 하나의 습관이 될 것 같고, 또 낭비 같아서 마시지 않기로 했다.”
“매형도 옛날에는 커피를 아주 좋아하셨잖아요.” “직장에 다닐 때는 그랬지!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면 커피를 한잔 마시고 직장에 출근하고,
또 사무실에서 후배들이‘커피 한잔하세요.’하며 타다 주거든, 그리고 직원회의를 하면서 한잔, 또 손님이라도 오면 한잔, 그러다 보면
사무실에서만 두 잔이나 석잔 정도 마시지, 또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커피를 권하니까 하루면 대여섯 잔은 마셨는데,
그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다보니 늘 바쁘고, 또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기 때문에, 주는 대로 받아 마셨는데,
이제는 누가 커피 권하는 사람도 없고 또 집에 있으면서 너희 누나에게 자꾸 차(茶) 타 달라는 소리도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그래서 습관을 들이지 않으려고 차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심심하시겠는데요.” “처음에는 마시지 않으니까 무언가 한 가지가 빠진 것처럼
기분이 허전했는데 안 마시는 것도 자꾸 습관이 되니까 이제는 괜찮아지더라, 그런데 그건 무슨 커피냐? 향이 굉장히 좋은데!”
“이건 루왁 커피라는 건데 원래 인도네시아에서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것을 모아 만든다고 하는데, 이건 베트남 산(産)이어서
품질은 조금 떨어질 줄 몰라도 제가 마시기에는 아주 좋던데요.” “그래! 사실 나는 지금까지 커피를 마셔왔어도 맛을 모르고 그냥 마셨는데,
요즘 전남 고흥(高興)에는 커피 농장이 있어 거기서 수확한 열매로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다고 하더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아주 오래전 추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았던 1970년대 중반,
그때는 지금처럼 커피가 대중화된 것도 아니고 또 믹스커피는 판매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전남 강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동생이 집에 오면서 병에 담겨있는 커피를 사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엄니! 이것은 커피요. 그랑께 이것을 찻잔에다 한 숟구락 붓고,
설탕도 그만치 부서 갖고, 뜬건 물을 부서서 잘 저서서 자시문 되요.” “커피를 한 숟구락 넣고 또 사탕가리도 한 숟구락 붓고,
그라고 뜨건 물을 부서 갖고 마시라고! 그래 알았다. 잘 묵을란다.”하고 동생은 다시 직장이 있는 강진으로 향하였고,
그날 밤 나는 당직(當直)이어서 사무실에 나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커피 생각이 나더란다. 그래서 동생이 가르쳐 준대로
조그만 찻잔에 커피와 설탕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는데 양이 너무 적어 그랬는지 차를 마신 것 같지도 않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커다란 대접에다 커피와 설탕을 여러 숟가락 넣고 물을 부어 마셨더니 이제야 차를 마신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이 들지 않더란다. 그래서 결국 뜬눈으로 날이 새고 말았는데, 아침에 당직을 끝내고 식사를 하러 집에 갔더니
“아야! 원래 커피를 묵으문 잠이 안 온다냐? 내가 언저녁에 그것을 묵고 잠을 한숨도 못 잤단 마다!” 하시는 바람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커피에도 여러 가지 사연이 참 많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올해는 가물아서 그란가 으짠가 풀도 풀도 징하게도 지러싼당께!"
'꼼지락 거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장암과 갑상선암 (0) | 2017.06.17 |
---|---|
삶과 죽음에 대하여 (0) | 2017.06.10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0) | 2017.05.27 |
사랑이 부족해서? (0) | 2017.05.21 |
이상한 소문 (0) | 2017.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