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제가 바보일까요?

큰가방 2003. 12. 28. 06:01
언제나 그렇듯이 보성우체국 집배실의 아침은 우편물이 도착되면서 시작됩니다.
엊그제 서울에서 아니면 부산이나 또는 멀리 강원도 춘천이나 제주도의 어느 우체국에서 접
수된 우편물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위하여 밤새 달려와 아침에 보성우체국에 도착되면 그
우편물들은 다시 일반 우편물은 일반 우편물대로 각 코스별로 나눠지고 나눠진 우편물은 다
시 배달하는 순로대로 구분을 합니다.

그리고 등기나 소포는 코스별로 나눠지면 컴퓨터에 전산입력을 한 다음 배달증을 출력하여
새로운 주인에게 배달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도 우편물의 정리작업을 마친 다음 제가 배
달 할 여러 개의 소포 중에 보성읍 우산리 장미 힐 아파트에 배달할 소포를 확인하는데 아
파트에 배달 할 소포는 두 개인데 두 개 모두 밀감박스입니다. 그래서 소포의 새 주인에게
전화를 합니다. 전화의 신호가 가고 잠시 후 전화 상대편에서 "여보세요!" 하면서 전화를
받자

"안녕하십니까? 이석기 댁이 맞지요? 여기 보성우체국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제주도에서 보
낸 밀감이 오늘 도착하였네요! 제가 이따 12시 쯤 아파트에 도착 할 예정이거든요! 그때 집
에 계셨다가 소포를 받아주십사 하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였더니 상대방에서 "예! 알았
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기에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우선 보성군청이나 경찰서 등 기관의 우편물을 오토바이에 싣고서 배달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보성군 교육청에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막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순간 저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 류상진입니다!" 하고 전화를 받자 "여보세요! 우체부
아저씨 되시지요? 여기 장미 아파트인데요! 아까 소포가 왔다고 하셨지요? 그런데요 제가
갑자기 밖에 나갈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소포를 지금 배달해 주실 수 없을까요?" 합니다.

그래서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지금 기관에 우편물을 배달하느라 밖에 나와있거든
요! 사모님 댁의 소포는 우체국에 있고 그래서 아무래도 약 10분 정도는 기다리셔야 하겠는
데 10분 정도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였더니 "예!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지요!"
하십니다. "예! 알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최대한 빨리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서는 다시 우체국에 돌아와서는 밀감 박스 두개를 오토바이 적재함에 싣고서 장미 힐
아파트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장미 힐 아파트 103동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운 후에 밀감 박스를 승강기에
싣고서 13층 버튼을 누르자 "문이 닫힙니다!" 하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승강기는 13층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승강기 안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서 숫자를 세
기 시작합니다. "13층이니까 1층에 4초씩 마흔 두 번을 세면되겠구나!" 하고서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서엇 여서엇 ~ 마흔 두울!" 하고 눈을 뜨자 승강기에서 "13층입니다! 문이 열
립니다!" 하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승강기의 문이 열립니다.

그래서 저는 밀감 박스를 이석기 씨 댁 현관 앞으로 운반을 한 후 초인종을 누르자 이석기
씨 부인께서 기다렸다는 듯 얼른 나오시더니 "아저씨!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밖을 나가야 하겠는데 그러면 아저씨께서 저의 집까지 무거운 밀감 박스를 가
지고 오셨다가 헛걸음을 하실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어요!" 하시기에 "아닙니다! 제가 늦게
오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더니 "아닙니다! 아저씨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고맙습
니다!" 하셔서 "예!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하고 인사를 한 후

저는 아파트의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하여 다시 승강기에 몸을 싣고서 1층에서 13층으로 올라
올 때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합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서엇 ~
마흔 두울!" 하고서 눈을 떴는데 승강기는 그대로 13층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 이상하다!
왜 승강기가 13층에 그대로 있지? 내가 숫자를 너무 빨리 세었나?" 하고서는 별 생각 없이
다시 눈을 감고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서엇!" 하다가 그때서야 갑자기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면 1층으로 가는 버튼은 누르고 숫자를 세어야 하는데 버튼은 누
르지도 않고 괜히 눈을 감고 숫자만을 세고 있었으니 승강기가 1층으로 내려 갈 리가 없겠
지요. 그때서야 저는 승강기의 1층 버튼을 눌러 승강기가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 한
후에 다시 숫자를 세려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참!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바보 같단 말이야! 1층으로 내려가려면 1층으로 내려가는 버튼
을 누른 후에 숫자를 세어야 하는데 버튼도 누르지 않고 숫자만 세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나를 보고 얼마나 바보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터져 나오는 웃
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제가 바보일까요?


'농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이라는 이름의 끈  (0) 2004.01.11
농촌의 향기  (0) 2004.01.03
이 세상에는 없는 약  (0) 2003.12.21
점심식사 소동(?)  (0) 2003.12.14
전라도 말  (0) 200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