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행복이라는 이름의 끈

큰가방 2004. 1. 11. 10:09
지난밤에 저의 집사람과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부부싸움이래야 그저 집사람과 둘이서 티격태격하다가 큰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담배를 한
대 피어 물고서 저의 집 대문 옆에 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혼자 쭈그
리고 앉아서 “참! 여자들은 이상하단 말이야!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는 신경질을 내고 야
단이야!” 하는 생각을 하다가 “별 일도 아닌걸 가지고 괜히 또 싸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 혼자서 피식 웃다가 문득 며칠 전 제가 산행을 다녀오면서 만났던 분이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2004년 1월 4일 새해 첫 번째 일요일 하루를 무언가 뜻 있게 보내보자는 마음으로 제가 근
무하는 보성우체국 직원들과 제암산을 다녀오자는 약속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보성에서 승
용차로 약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제암산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제암산
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곰재에서 재작년에 걸어두었던 “추억은 가슴속에 쓰
레기는 배낭 속에!” 라는 표어가 적힌 조그만 현수막을 새것으로 바꾸고 있는데 전남 여수
시에서 살고 계신다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분 두 분과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세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제암산은 처음이라며 길 안내를 부탁하시기에 저의 일행과 함께 산을 오
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곰 바위 앞에서 사진 촬영도 하고 곰 바위에 대한 설명도
해 드리면서 계속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이 바위가 멀리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곰처
럼 생겼다고 해서 곰 바위라고 합니다! 지금 저곳이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 인데 웅치라는
지명이 곰 웅(熊) 재 치(峙)자를 써서 웅치면이라고 합니다!” 하는 저의 설명에 “아! 정말
그렇겠군 멀리서 보지 않더라고 바위가 정말 이상하게 생겼네!” 라며 바위의 생김새에 대
하여 감탄사를 늘어놓습니다.

“겨울 산행은 봄이나 여름 또는 가을처럼 꽃이나 숲이나 단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옷
을 벗어버린 나무들만 늘어서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러
나 겨울 산행은 나름대로 상쾌함과 즐거움이 함께 따르는 산행이어서 정말 좋은 것 같다!”
라는 저의 말에 저와 함께 동행하시던 여수에서 오신 분들도 “정말 그런 것 같다!” 며 저의
말에 동감을 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윽고 임금 바위가 있는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데 여수에서 오신 분들께서 가져오신 따뜻한 밥과 그리고 저의 직원들이 준비한 음식을 함
께 나눠먹으며 임금바위에 대하여 설명을 합니다.

“임금바위는 이 바위 아래쪽에 있는 모든 바위들이 이 바위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임금바위라고 부른답니다. 제암산이란 이름은 임금 제(帝) 바위 암(岩)자를
써서 제암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암산이란 저 바위의 이름을 따서 제암산
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고 설명을 드리고 나서 제가 준비해간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모두 한잔씩 나눠 마신 후 쉬엄쉬엄 하산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중턱
아래쪽에 있는 조그만 옹달샘에서 누군가 남을 위하여 가져다놓은 조그만 프라스틱 바가지
로 샘물을 한 모금씩 마시는데 갑자기 동행하던 세분 아주머니들께서

“어제 누구네 집은 또 부부싸움을 하였다고 그러데!” “아이고 그 집에는 무슨 부부싸움을
그리도 자주 해!” “그러게! 부부가 아니라 원수가 사는 모양이야!” 하면서 같은 동네에서
사시는 분의 부부싸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러자 저와 동행을 하던 남자 분이
저에게 먼저 산을 내려가자는 눈짓을 하여 그 분과 함께 산을 천천히 내려오는데 갑자기
그분께서 “참! 행복에 겨운 사람들이구먼!” 하십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제가
물었더니 “부부싸움을 할 수 만 있어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야!” 하십니다. “아니 부
부싸움을 하는데 무슨 행복에 겨운 사람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하고 제가 다시 물었더니

“내가 지난번에 안 사람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어! 그리고 혼자서 살고있는데 지금 생각
을 해 보니까 그래도 부부싸움도 하고 사랑싸움도 하고 살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
아! 이제 집사람이 떠나고 없는데 누구하고 부부싸움을 하겠나? 받아줄 상대가 없는데 어떻
게 부부싸움을 하겠나? 그저 집에 들어가면 멀건히 천장만 쳐다보다 잠이나 자던지 아니면
TV나 보던지 하는데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자네는 나보다 더 젊으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부부싸움도 많이 하고 사랑싸움도 많이 하면서 살게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게나!”

하시며 저의 앞을 걸어가십니다. 남녀가 서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면
서 어떻게 부부싸움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부부가 함께 행복이라는 끈을
잡고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한번 놓아버리면 다시는 잡지 못할 행복의 끈을
놓아버리고 다시 그 끈을 잡았을 때는 끈에는 이미 행복은 멀리 떠나고 외로움만 남아있었
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앞에서 터벅터벅 걸어가시는 그 분의 어깨 위를 고독이라는 그림자
가 자꾸 누르고 있는 것 같아 저의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수 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야! 자네는 부부싸움도 많이 하고 사랑싸움도
많이 하고 살게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나!” 하
신 말씀이 아직도 저의 귓가에 메아리 쳐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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