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농촌의 향기

큰가방 2004. 1. 3. 21:52
새해에 접어들면서 햇볕은 무척이나 따사롭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 날씨가 포근한 줄 알고 옷을 가볍게 입고 우편물의 배달을 나갔다가 추워서 혼
이 났던 저는 오늘은 완전히 두툼한 옷으로 중무장(?)하고 나서야 우편물 배달하기 위하여
우체국 문을 나섭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들판에는 지난 가을 탈곡을 하고 덮어 놓았던 짚
들만 무성하게 깔려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양지 바른 논바닥에 조그맣게 자
라나는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검은 염소 몇 마리가 깔려있던 짚을 이불 삼아 그 위에 앉아 되
새김질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의 오토바이는 어느덧 전남 보성 노동면 광곡리 광화 마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
화 마을 첫 번째 집에서 주인을 부릅니다. "이선영 씨~이!" 하고서 큰소리로 주인을 부르자
"누구여?" 하면서 대답만 할 뿐 주인은 방문을 열지 않습니다. "아! 형니~임 대낮에 뭐하고
있어요? 빨리 문을 열지 않고!" 하는 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이선영 씨께서는 "아! 이 사
람아 쪼깐 기달려 거 성질도 징하게 급하네!" 하시며 금방 낮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부스
스 한 눈으로 방문을 열고 저를 쳐다 보십니다.

"형님 이혜임 씨라고 잘 아시지요?" 하고 묻자 이선영 씨께서는 "응 우리 딸이 이혜임이여
근디 뭣이 왔는가?" 하시기에 "소포가 하나 왔는데요! 여기다 서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하
면서 소포 하나와 등기 우편물 수령증을 이선영 씨에게 내밀자 "으~응! 소포가 왔어? 그란
디 으디다가 싸인하라고?" 하시며 제가 내민 등기 우편물 수령증을 눈을 가늘게 뜨고서 바
라 보십니다. "아니 형님 이 종이하고 무슨 원수 진 일 있어요? 왜 종이에다 그렇게 인상을
있는 대로 팍 쓰고 째려보세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 이 사람아! 내가 무슨 인상을 쓴다고 그래 캄캄한 방에 있다가 갑자기 훤 한데로 나
온께 눈이 부신께 그라제!" 하십니다. "아니~이 내가 보기에는 종이에다 대고 인상을 있는
대로 쓰시는 것 같아서 혹시 이 종이하고 무슨 원수가 지셨나 싶어서 종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하라고 시키려고요!" 하였더니 "아이고 이 웬수가 한 살 더 먹으나 덜 먹으나
똑 같네 그려!" 하시며 껄껄껄 웃으십니다. "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농담 한번 해봤
어요!" 하는 저의 말에 "그래 자네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잉!" 하십니다.

저는 다시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나서 노동면 용호리 수촌 마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수촌 마
을은 최씨들이 많이 살고 계시는데 최씨들은 빕 새라는 또 다른 별칭이 있다고 합니다. 그
런데 그 빕 새들이 숲 속에서 산다고 하여 숲 촌으로 불려지다가 오늘날의 수촌으로 부르는
마을입니다. 그런데 수촌 마을로 가까이 다가서자 어디선가 별로 향기롭지 않은 냄새가 저
의 코를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이상하다 어디서 나는 냄새지?" 하는 생각에 사방을 둘러보
았더니

제가 서 있는 도로의 아래쪽 논에서 수촌 마을의 이장 님께서 논에 퇴비를 깔고 계시는 중
이였습니다. "이장 님! 수고가 많으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서 수촌 마을로
이동하려는데 이장 님께서 "어~이! 어~이!" 하시며 저를 부르십니다. "예! 왜! 그러세요?"
하고 대답을 하였더니 갑자기 몹시 화가 난 목소리로 "자네 이리 좀 와 봐!" 하시는 겁니
다. "아니 갑자기 왜 이장 님이 화가 나셨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어리둥절하여 오토바이
를 길가에 세워두고 논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갑니다.

그랬더니 이장 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자네 오랜만에 만났응께 술이나 한잔하고 가라
고!" 하시는 겁니다. "예~에? 아니 대낮부터 웬 술은 술입니까? 술은 나중에 제가 퇴근하고
나면 그때 한잔 사주세요!" 하였더니 "자네는 항상 똑 같구만!" 하시며 몹시 서운해하는 눈
치십니다. "이장 님! 제가요 지금은 제 옆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앉아서 술을 따라 준다고
해도 마시지 못할 처지인데 이렇게 별로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술술 풍기는 곳에서 어떻게
술을 마시겠습니까?" 하였더니 "이 사람아! 이 냄새가 바로 농촌의 향기여! 알것는가?" 하
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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